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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토바이타는여교수] 아버지 죽다
    최고관리자 / 2015-11-24 10: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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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훈 교수의 <오토바이타는여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프웹진에 연재되었던 글로 2015년 사이트개편 당시 분실된 데이타를 복구해 재연재하는 글입니다.

    카테고리가 아직 복구되지 않아 임시로 <문화난장북리뷰>로 업데이트되는 아래의 글은 2011년 11월 첫째주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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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요즘 예전에는 없었던 신종 직업이 많이 나타난다. 좀 오래된 통계이긴 하지만 1995년 통계는 약 1000개의 직업이 새로 생겨나고 100개의 직업이 영원히 사라졌음을 말하고 있다. 사회가 변했기 때문이고 지금도 급속히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5년전, 아니 2년전 만 해도 상상도 못한 물건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유용하게 쓰고 있다.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은 언제 나타났을까? 세일즈맨이란 직업 역시 자본주의와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대량생산과 유통이 시작되면서 나타난 신종 직업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꽃이었다. 1950년대 미국 경제가 호전되고 산업화가 가속화할 시절, 세일즈맨들은 자동차를 타고 상당히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다. 그들을 위한 1박 묵고 떠나는 대중적 비즈니스호텔도 이 때 생겨났다. 세일즈맨들은 호텔을 전전하며 가가호호 방문이나 전화 통화로 다양한 물건들을 팔았다. 이들 중에는 상당한 부자가 된 성공한 세일즈맨도 있었다.

    50년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자기계발서는 데일 카네기(1988-1955)의 책이었다. <인간관계론> 이나 <자기관리론>2011년 현재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을 지경이니 당시 미국은 말해서 무엇하랴. 하지만 이런 자기계발서가 긍정적인 영향만 미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실력이 수반되지 못하는 계발서는 결국 얄팍한 처세론에 그치고 오히려 참다운 인간관계를 망치게 될 수도 있다. 아마 50년대, 미국 기업가들이나 경영자들, 세일즈맨들은 카네기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1단계: 우호적인 사람이 되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라.

    2단계: 열렬한 협력을 얻어내라. 타인과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능력 을 키워라.

    3단계: 리더가 되라.

    4단계 감동-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되라. 비전을 공유하고 열정을 불어 넣은 능력을 키워라.

     

    바로 이런 카네기식 인간관계론을 굳게 믿고 따른 세일즈맨이 아써 밀러(Arthur Miller)의 세일즈맨인 윌리 로만이다. 로만은 글짜 그대로 Loman, low man, 귀족이나 상류층이 아닌 보통 사람, 서민이다. 거대한 자본주의 산업화 사회에서 현대인은 기계의 한 부속품같은, 작은 나사같은, 마모되거나 훼손되면 바로 갈아 끼울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세일즈맨 윌리 로먼은 판매와 소비의 사회에서 그런 나사와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a Salesman>의 주인공이다.

    윌리 로먼은 30년 이상 뉴욕 북부와 뉴 잉글랜드 지방을 돌아다니며 세일즈맨으로 일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그는 무엇을 팔았을까? 그가 판 상품은 나일론 스타킹이다. 당시는 나일론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았고 나일론은 의류업계에 혁명적인 신상품이었으니 나일론 스타킹은 인기최고의 상품이었다. 그러나 윌리의 부인 린다는 잡에서 항상 구멍뚫린 면양말을 깁고 있다.

    윌리 로만은 이제 60이 넘었고 판매실적도 점점 떨어지고 눈이 어두워져 운전마저 힘에 겹게 된다. 외판근무는 어렵다고 판단하여 사장에게 내근으로 옮겨달라고 부탁을 하러가지만 사장은 그를 해고시켜버린다. 이 젊은 사장의 아버지는 윌리의 친구이고 이 회사의 창업주이다. 윌리는 이 젊은 사장이 태어났을 때 이름도 지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늙고 무능력한 세일즈맨은 이제 회사에 필요없는 존재가 되었고 오렌지 속을 까먹고 껍질을 버리듯이기업은 그를 해고해 버린다.

    윌리에게는 두 아들이 있다. 큰 아들 비프(Biff)는 발음 대로 쇠고기, 즉 근육질의 사나이다. 고교시절에는 전도유망한 미식축구선수였지만 34세인 지금, 그는 좀도둑질로 감옥에 들락거리는 쓸모없는 건달, 루저(looser)가 되었다. 작은 아들 해피(Happy)는 성적 쾌락을 좇는 도덕성 제로인 허풍장이이다. 아버지 윌리는 자신에게 적용했던 카네기 인간론을 두 아들을 양육할 때도 그대로 적용한다. 그래서 두 아들에게 언제나 인기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고 인기만 있으면 무얼해도 성공하며 작은 잘못은 이해받는다고 가르친다. 비프가 건설현장에 쌓아둔 목재를 훔쳐왔을 때나, 학교 물건인 럭비 공을 가지고 왔을 때도 그것을 도적질이라고 가르치지 않고 사람들이 널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가르친다. 이런 식으로 아들들을 가르쳤기 때문에 아들은 건달이 된다. 연극은 윌리와 비프 부자의 갈등을 주 흐름으로 전개해 나가는데 부자는 서로 사랑하지만 왜곡된 인간관이나 사회관으로 해서 서로를 오해하고 과잉기대를 하며 상처를 준다.

    이 연극은 1949년 뉴욕에서 공연되어 그 해 퓰리처 상을 수상하며 작가 아써 밀러를 미국 연극의 스타로 부상시켰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중 1985년 더스틴 호프만과 존 말코비치 주연의 영화가 유명하다. 더스틴 호프만은 아들과 갈등하는 그리고 아들에게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자살하여 그 보험금을 남겨주려는 아버지 윌리 역을 훌륭히 그려내었다. 보험금은 그러나 물거품이 된다. 끝까지 왜곡된 가치관과 꿈을 버리지 못했던 윌리는 그렇게 죽었고 린다는 남편의 쓸쓸한 무덤 앞에서 주택융자금 할부를 오늘 다 갚았는데 정작 그 집에 살 사람은 없어졌다고 눈물을 흘린다.

    그의 죽음은 세일즈맨의 죽음이었고, 또 아버지의 죽음이었고, 한 서민의 죽음이었다. 또 평생을 바쳤지만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진정한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소모품으로 전락한, 실패한 인간의 죽음이었다. 윌리의 모습은 사회가 급변할 때 그 변화의 물결을 타려고는 했지만 적응하지는 못한 인간의 슬픈 모습이다. 그는 산업사회보다는 농업사회와 개척시대의 가치와 질서를 몸에 지닌 인간이었고 세일즈는 사실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보지 못했거나 그것을 억압하고 시대 변화만 좇아가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비극적 종말을 맞게 된다. 알라스카로 가서 모험에 뛰어든 형 벤(Ben)은 오히려 자신의 그런 성향을 잘 좇아가 미국의 꿈을 이룬 백만장자가 된다. 물론 벤은 윌리의 환상 속에 나오는 인물로 또 하나의 허구, 왜곡된 꿈일 수 있다.

    아버지 윌리는 아들들에게 늘 영웅으로 보이고 싶어하는데 이 점 역시 그릇된 허세이다. 자신을 완벽한 아버지, 남자로 아들들에게 보이게 했으며 또 스스로도 장남 비프를 완벽한 아들로 믿고 싶어했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에게 호텔에서 싸구려 여자와 바람피우는 장면을 들키는 치명적 실수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실수인 점을 깨닫는 데는 15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옆 집 챨리의 아들 버나드의 입을 통해서 뒤늦게 이 일이 아들에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를 영웅처럼 숭앙하던 비프의 성장은 사실 아버지의 외도를 목격하는 그 순간 멈춰버리고 만다. 일종의 정신외상을 입은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 미국이 산업화와 도시화의 가속도에 빠져있을 때, 카네기 류의 계발서들이 붐을 이루고 있을 때, 아써 밀러는 윌리 로먼과 그 아들 비프를 통해 그런 속도 속에서 이용당하고 희생되는 사람들을 무대 위에 그려냄으로써 미국사회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1999, 샘 멘데스 감독의 <아메리칸 뷰티><세일즈 맨의 죽음>과 비교해 볼만한 영화다.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로 바뀐다. 49년과 99년 사이의 50년의 차이일 수도 있다. 문학에서 언제나 주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문학 뿐 아니라 신화, 역사도 마찬가지. 모두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로 이어지는 부자, 그리고 아들 오이디푸스 - 서양문화와 상상력의 원형적인 이 아들들은 모두 아버지를 죽인다. 서양은 이렇게 친부살해(Parricide)로부터 모든 것이 기원된다. 연극계도 마찬가지. 브로드웨이는 항상 부자 이야기로 넘쳐 났을 뿐, 모녀의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아니 벽을 높이 세워놓고 아예 끼워들어 오지 못하게 했다. 이 벽은 페미니스트 연극의 등장으로 일단 깨어지긴 했다. 베쓰 헨리(Beth Henry)<마음의 범죄> (Crime of the Heart, 1981)는 세 자매와 모녀관계를 다룬 희곡으로 풀리처 상을 받고 브로드웨이에 입성하여 이 쾌쾌묵은 전통에 일격을 가했다. 하지만 이 전통은 아직 완전히 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아메리칸 뷰티>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다. 윌리 로먼은 여기서 레스터로 바뀐다. 레스터는 영웅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딸과 부인에게 경멸당하는 무능력하고 재미없는 아버지다. 딸의 친구 안젤라를 보고 잃어버린 청춘을 되살리려고 한다. 안젤라는 마치 벤처럼 레스터에게는 환상이고 잃어버린 꿈이다. 윌리가 꾸는 벤이라는 꿈은 그의 부와 물질에 대한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것은 꿈일 뿐이다. 이루지 못하는. 안젤라 역시 중년 남자 레스터의 성적 환상이다. 그의 억압해왔던 성에 대한 환상, 젊음에 대한 환상이 헛되이 어린 소녀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빨간 장미, 아메리칸 뷰티 종은 이 성적 환상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영원히 쫓을 수는 없는 꿈이다.

    죽은 레스터의 나레이션, “오늘은 당신 인생의 나머지 날들 중 첫날이다로 영화는 시작한다. 즉 아버지는 자신이 죽을 걸 알고 있고 죽기 직전 그는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난 날을 회상한다. 레스터의 가정은 이름만 가정이었을 뿐 모두는 각자의 이익과 쾌락만 추구하고 살고 있다. 윌리 로먼의 가정이 잘못된 가치관 위에 서 있다면 레스터의 가정은 욕망과 본능에 마비되어 있다. 그리고 미국 중산층(상층 중산층)의 위선, 허위, 사랑부재, 타락을 보여준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으로 썩어들어가는 텅빈 가정이다. 윌리가 보험금을 노리고 자살하지만 헛된 죽음을 죽는다면 레스터는 아이러니컬하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그 순간에 죽는다. 이웃인 해병대 출신 대령은 레스터에 의해 자신이 그렇게 혐오해왔던 동성애 성향이 자신에게 숨어 있었음을 발견하고 레스터를 쏜다.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그가 무시하고 상관하지 않았던 가족, 늘 갈등하고 미워하던 가족이 결국 나의 다른 모습이며 나를 지키는 소중한 것임을 일깨워준다.

    윌리 로먼과 레스터 번햄은 미국의 50년대와 90년대의 대표적 아버지이다. 세일즈맨은 가정에 헌신하다가 죽고, 가정에서 설 자리가 없었던 레스터 역시 죽는다.

    인생은 쉽지 않다. 누구나 윌리 로먼이나 레스터 번햄처럼 길에서 벗어나 잘못 갈 수 있다.

    지나친 억압이나 상처는 그 인생길을 잘못 벗어나게 할 수 있는데 . . . 결국 끝없이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길인지 멈춰서서 성찰해 보는 것 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얘기 밖에 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길 위의 동반자들이고 도반(道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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