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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토바이 타는 여교수, 27화
    최고관리자 / 2016-04-14 01:13:56
    • 이지훈 교수의 <오토바이타는여교수>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이프웹진에 연재되었던 글로 2015년 사이트개편 당시 분실된 데이타를 복구해 재연재하는 글입니다.

      카테고리가 아직 복구되지 않아 임시로 <문화난장북리뷰>로 업데이트되는 아래의 글은 2012년 3월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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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여자의 깨어짐의 이야기

     

    포도주와 빵. 예수의 피와 살. 가톨릭 교회에서 매일 행해지는 미사 성찬식의 가장 핵심이 되는 상징.

    이는 내 피니 받아 마시라” “ 이는 내 살이니 받아 먹으라

    신부는 작은 잔에 붉은 포도주 한 모금과 하얀 빵 한 조각을 떼어준다.

    포도주가 되기까지의 긴 여정. 한 여름 뙤약볕을 포도는 온 몸으로 견뎌야했고 비바람에 젖고 부대끼기도 해야했다. 그리고 잘 익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사람의 손에 의해 가지로부터 잘려지고 커다란 통에 담겨 무참히 짓이겨진다. 짓밟힌다, 글자 그대로!

    원래의 송이송이 탐스럽던 모습은 이제 없다. 그리고 어두운 오크 통 속에서 숙성의 오랜 시간을 인내한다. 한 잔의 포도주가 우리 앞에 놓이고 내 갈증을 시원하게 해 줄 수 있기 까지의 포도의 여정은 만만치 않다.

     

    ()도 마찬가지다. 빵의 모습 속에 밀알의 원래의 모습은 없다. 밀알 역시 햇볕, 비바람, 여러 나쁜 상황들을 잘 견디며 영근다. 그리고 어느 가을 날, 밀은 추수된다. 포도가 짓이겨지듯이 밀알은 낱알이 빻아져 가루가 된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가루가 된 후에도 다시 물과 섞여 반죽이 되고 뜨거운 화덕에 들어가 구어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빵이 되어야만 누군가의 배고픔을 달래줄 수 있다. 이런 과정들을 생각해 보면 한 잔의 포도주와 한 덩이의 빵은 은혜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기적이고 선물이다.

    예수님은 그래서 이 포도주와 빵을 자기 피와 몸이라고 했다. 그는 친히 우리를 위해 우리의 밥이 되어주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기적 본성(원래 모습)을 짓이기고 빻아서 다른 모습 - 다른 이들의 갈증과 배고픔을 덜어주는 - 으로 바뀌기를 원하셨다.

     

    타인을 위해 나를 내어준다는 것

     

    타인을 위해 나를 내어준다는 건 아마도 천상의 희열일까? 이 희열을 알기 위해선 변화의 고통, 즉 내가 부숴지는 그 엄청난 고통을 먼저 감수해 내어야 한다.

    이런 부수어짐, 깨어짐이 전혀 불가능한 부류의 사람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만일 이 부숴짐에도 단계가 있다면, 보통의 사람들은 아주 초보급의 수준에서 맴돌며 일상을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자기중심에서 이타적으로 변하며 존재 자체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이런 순전하고 황홀한 경험(극한의 고통을 동반한 후의)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축복은 결코 아니다. 고백컨대 나도 늘 이 축복을 고대하며 가장 인간적인(초보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어떤 여자의 다음 이야기는 바로 이 깨어짐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첫 마디는 애가 둘 딸린 홀아비하고 결혼을 했어요.” 였다. 아직 우리 몇 사람은 그게 어떤 말인지 잘 몰랐다. 너무도 조용하고 겸손하게 시작된 이야기였기 때문에 처음에 이 말은 우리의 주의를 크게 끌지 못했다.

    아니, 누가요?”

    성급하게 질문이 던져졌다. 다음 질문은 처녀로 결혼한 거예요?”였다.

    그랬다. 그녀는 스물일곱살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홀아비와 결혼을 했단다. 그것도 세 살, 다섯 살, 딸이 둘이나 있는. 그런데 그 남자는 또 자신보다 두 살이나 연하였단다. 왠일인지 상황이 자꾸 그렇게 두 사람이 결혼하는 쪽으로 되어갔다고 했다. 그 남자에게 특별히 관심이나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소개한 사람(시숙이 된)이 자꾸 권해서였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 다섯 살 된 큰 애가 엄마라는 말을 했고 그 말에, 자신을 엄마라고 믿어버리는 그 아이의 천진한 모습에 그만 발목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결혼을 했고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갑자기 주어진 역할에 몰두하며 정신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남편이 그런 자기를 두고 바람이 났단다. 40대 중반에 들어섰을 때였다.

     

    목에 힘 주고 살아온 자신이 보여

     

    어떻게 이런 나에게 남편이 그럴 수가 있냐?”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이 깨달아졌다. “난 당신에게 이렇게 이렇게 했던 사람이야, 아이도 잘 키워주고, 시어머니도 모셨고, 당신 뒷바라지 하며 얼마나 열심히 나를 희생하며 살았는데 하는 으시댐. 남편에게 늘 으시대며 목에 힘주고 살아온 자신이 보였다는 것이다.

    세상 모든 남자들이 외도의 가능성이 있는데 왜 내 남편에게는 그게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라는 자신의 오만한 마음도 보았다. 그녀는 이 때 처참히 깨어졌어요. 내 교만이었지요라고 말했다.

     

    이 아픔은 자기 성찰을 동반했다. 보통의 스토리는 아픔만을 말한다. 남편의 외도를 통한 배신감, 분노, 증오, 질투, 그리고 자신의 운명에 대한 원망, 후회.

    용서가 안 되는 이 아픔은 자기를 파괴시키고 관계를 파괴시킨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의 고통에 대해 바라보는 관점을 달리했다. 철저히 자기를 바라봤다. 그것도 차원을 달리 한 관점에서. 그랬으니 내가 이런 이런 여잔데. 당신한테 어떤 여자인데. . .” 하는 자신의 교만과 아집이 보였을 것이다. 그것이 결국은 남편이 힘든 삶을 살도록 몰아부쳤을 것이고 외도를 불러 일으켰다고 해석한 것이다.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깨어지게 했어요.”

    자기 의와 잘남에 돌처럼 굳어있던 자신을 하나님이 그렇게 깨어주셨다고 했다. 조용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우리의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누군가는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야기는 이어졌다. 딸들은 다 훌륭히 자라났고 효성도 지극하여 엄마를 그렇게 사랑한단다.

    친모가 아닌 걸 언제 알게 되었나요?” 누군가 질문했다.

    다섯 살 아이는 아무 것도 기억 못하고 그저 자신을 친엄마로 알고 있더라고 했다. 적당한 때에 사실을 알려주었단다. 언젠가 생모를 찾아주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딸들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오히려 엄마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고 모녀는 더없이 행복하다.



    자아가 깨어진 자의 아름다움

     

    그녀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10여분?

    그 동안에 그녀의 인생이 압축되었다. 그 인생은 나를 울리고 있었다. 한 잔의 향기로운 포도주가 되어 내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고 있었다. 아니 나 뿐만 아니라 거기 있는 몇 사람의 가슴 모두를 촉촉이 적셔주고 있었다.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도 그녀의 얼굴에서 느껴지던 겸손한 품성이 이유를 가지고 내 마음에 새겨졌다. 자아가 깨어진 자의 아름다움이었다.

     

    이런 사람은 주위의 분위기를 바꾸고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즉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나의 굳어진 부분은 어디인가? 참 오랫 동안 타성에 젖어 살았다는 각성. 내 생각과 느낌과 태도가 시멘트처럼 굳어있음이 돌연 깨달아지고 그 굳어있음이 내 생명을 짓누르고 있음도 서서히 느껴진다. 이 돌처럼 굳어진 타성도 세월과 더불어 일어난 현상이리라.

     

    만물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이 때에 나도 내 속에 굳어진 어떤 것을 깨고 발랄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고 싶다는 소망이 솟아 오른다. 내 이기적 자아가 죽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 덩어리 빵이 된다. 그 이기적 자아가 펄펄 살아 있어서 내 삶의 현장이 그렇게 겨처럼 훨훨 날리었구나. . .

     

    그 아름다운 여자는 내게 그걸 가르쳐주었다. 그 살아온 삶으로 말이다. 그녀는 성자였다.

     

    출처:http://www.hotelrestaurant.co.kr/data/contents.asp?num=534&page=4



    출처:http://blog.daum.net/rzzang1009/6674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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