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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페미니스트잡지 ‘엠마’ 40주년
    최고관리자 / 2017-02-07 23:30:48
  • 남자를 비웃는 여자앨리스 슈바르처

    페미니즘은 더욱 강력해졌다

     

    독일의 영향력 있는 페미니스트잡지 엠마가 올해로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창간부터 현재까지 40년째 편집인을 맡고 있는 앨리스 슈바르처는 비록 젊은 여성들의 지지는 줄어들었을지언정 오늘도 여전히 거침없이 발언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시위들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이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수십만명의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슬로건 아래 전세계에서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들은 핑크 모자를 쓰고 여성혐오와 동성애 차별, 인종차별 등 각종 차별 철폐에 대한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 다음날에는 워싱턴D.C., 시애틀, 뉴욕같은 미국의 도시뿐만 아니라 런던, 베를린, 나이로비, 도쿄, 시드니까지 세계 여러 도시들에서 연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1970년대 독일의 여성해방운동의 시작을 회상해보자

    그 때는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받는 여성의 법적 지위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지금처럼 거리로 나왔었다

    70년대 독일에서 기혼 여성들은 가정을 돌보도록 법률로 강제되었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책임을 등한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직업을 갖는 것이 허용되었다

    반면 남성들은 아내의 동의 없이도 그들의 직업을 그만 둘 수 있었다.

     

    그럼에도 1949년부터 내내 독일의 헌법은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었다

    독일 여성들은 이 불평등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의 가장 중요한 대변인 역할을 한 것은 잡지 엠마였다

    여자이름 엠마는 해방이라는 뜻의 ‘emancipation'에서 따온 것이다

    부제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잡지였으며 엠마는 곧 페미니스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최초의 엠마가 신문 가판대에 등장한 것은 1977126

    창간 편집인 앨리스 슈바르처는 모든 미디어에 의해 난도질을 당했는데 전국적인 일간신문 디벨트는 그녀를 남자를 비웃는 여자라고 평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지만 엠마는 여전히 인쇄되어 나온다

    슈바르처에 따르면 내가 아는 한 엠마는 페미니스트의 손에서 발행되고 있는 최후의 전문 페미니즘 잡지이다.” 

    엠마는 매호 3만부씩 발행되며 그중 2/3가 구독자의 우편함으로 직접 배송된다.


    앨리스 슈바르처는 엠마를 창간하기 이전에 이미 유명인이었다

    1971년 그녀는 프랑스에서의 유사한 캠페인에 근거해 독일에서 우리는 낙태를 했다는 여성들의 낙태고백 캠페인을 시작했고 그것은 전국적인 스캔들이 되었다

    1975년 그녀는 성적 대상으로 여겨지는 여성들의 성적 불만족과 불감증을 토로한 책 아주 작은 차이로 또 다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지난 40년 동안 엠마는 수많은 여성이슈들을 다뤄왔다

    1978년 그것은 여성혐오적인 이미지를 표지로 다룬다고 스턴지를 고소했으며 포르노그라피, 여성할례, 젊은 무슬림여성에 대한 차별반대 등의 캠페인을 벌였다

    엠마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그 자체가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또 직접 논쟁을 시작하기도 했다.

     

    엠마가 비록 40년 동안 여성운동을 지켜보고 동반해왔지만 새로운 인터넷 페미니스트 세대와 갈등과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판과 충돌이 자주 있었다. 논쟁의 주요포인트는 매춘을 규제하려는 엠마의 입장과 반인종주의와 관련된 것들이다.

    엠마는 이슬람과 근본적 이슬람주의를 구별하지 않는다. 이 입장은 이민여성들에 대한 엠마의 입장에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앨리스 슈바르처 자신의 독재적 리더십 스타일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슈바르처가 엠마의 편집인 자리를 내려놓을 것을 고려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눈에 띄는 후계자가 없어 그녀는 아직까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40주면 기념호에서 독자들로부터 온 편지들이 그녀를 계속 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편지들은 매우 확신에 차있긴 하지만 가슴 아프기도 하다

    그들은 엠마가 어떻게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의 삶을 변화 시켰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페미니스트적인 생각과 행동이 계속 필수 불가결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당신은 4000년 가부장제 역사를 40년에 지울 수는 없다.”



    글 유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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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덧글(5)

  • hjh1984 [2017-02-09]
  • 2013년 10월호 『월간조선』에 실린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提言)」에서 지적했듯이, 남성은 생산 노동을 통해 여성을 부양하고 여성은 돌봄 노동(care work)을 통해 남성을 내조하는 상호적이고 쌍무적인 관계가 ‘가부장제’라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가 규정한 전통적인 남녀관계였다는 것은 수많은 역사학적, 인류학적 연구결과를 통해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숙열 선생님께서는 1970년대 독일 사회에서 여성은 돌봄 노동이라는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받은 반면, 남성은 생산 노동과 이를 통한 가족부양이라는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주장하셨습니다. 1970년대 독일 사회가 여성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는 유숙열 선생님의 주장을 과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 hjh1984 [2017-02-09]
  • 일단 1970년대 독일의 법률이 여성에게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한 반면, 남성에게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윗글의 주장이 과연 사실인지 의문을 품어봐야 합니다. 한국남성학연구회 회장이셨던 고(故) 정채기 교수님께서 공동저서 『남성학과 남성운동』(동문사, 2000)에 게재한 논문 「남성운동에 관한 제(諸)연구」에 따르면, 1985년 설립된 영향력 있는 남성 모임 〈브레멘 남성 그룹〉에서 ‘남성과 일(work)’은 주된 토론 주제였으며, 매년 열린 공개 집회에서는 수많은 남성들이 ‘남성은 무엇 때문에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남성은 일을 통해서 밖에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며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 사회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연구한 토마스 퀴네 등 여러 역사학자들의 공동저서 『남성의 역사』(솔출판사, 2001) 등 많은 저술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동안 남성에게 병역이나 가족부양 등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요하며 그들을 압박한 것은 독일 사회도 우리 사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윗글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hjh1984 [2017-02-09]
  • 설령 1970년대 독일의 법률이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게 사실이라 해도, 이를 근거로 독일 남성들이 전통적인 성역할로부터 자유로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인 사고의 발로입니다. 법률이라는 것은 관습, 종교, 사상, 종교 등과 함께 거대한 사회문화 구조를 지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날씬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게 우리 사회의 법률이 여성에게 신체적 아름다움을 강요했기 때문일까요? 오늘날 기혼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무거운 가사노동에 시달린다고 페미니스트들은 목소리를 높이지만, 우리 사회에 가사노동을 여성의 몫이라 규정한 법률이 어디 있습니까? 또한 예나 지금이나 대다수 가정에서 남성들은 배우자보다 훨씬 많은 결혼비용을 부담하고 훨씬 무거운 가족부양 책임을 짊어지는데, 이런 현실이 우리 사회의 법체계가 부조리하기 때문일까요? 만약 1970년대 독일의 법률이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 이는 남성에게 병역이나 가족부양 등 전통적인 성역할이 요구되는 게 독일 사회에서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전통적인 남성성에 따른 남성억압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반증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 hjh1984 [2017-02-09]
  • 윗글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곳 필진들이 그동안 젠더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어느 한쪽 성(性)을 역성드는 데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으며, 유숙열 선생님께서도 그 중 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페미니즘이 가진 근본적인 한계이기도 합니다. ‘가부장제’라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를 지탱한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유교 등 기성 종교가 결혼이라는 보편적인 사회문화 기제를 통해 여성에게 고유의 몫을 보장했고 남성으로 하여금 이를 존중하게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여성이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억지스러운 주장을 내세웠으며, 오늘날 여성의 경제적 기반 및 능력 유무에 관계없이 남고여저(男高女低)의 결혼이 일반적인 현실을 외면한 채 소위 ‘맞벌이’를 운운하며 남성에게 요구되는 전통적인 책임을 과소평가하려 들었던 것은 ‘절름발이 페미니즘’이 저지른 사실 왜곡의 대표적인 사례였지요.
  • hjh1984 [2017-02-09]
  • 즉 윗글도 전통적인 여성성에 따른 여성억압의 심각성을 부각시키고 전통적인 남성성에 따른 남성억압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싶은 유숙열 선생님의 비뚤어진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해도 섣불리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이곳 게시판이 지금처럼 쇠락하게 된 것도 이런 비뚤어진 욕망 탓이 매우 큽니다. 유숙열 선생님을 비롯한 이곳 필진들이 진정 이곳 게시판의 부활을 바란다면, 먼저 그동안 보여준 편협한 사고에 대한 뼈아픈 자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에서 남녀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희생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절름발이 페미니즘’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어느 한쪽 성을 역성들어서는 결코 진정한 성해방을 이룩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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