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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회]열번째 언니, 교회언니 "자위하다가 앞니가 나간 적도 있어요"
    이프 / 2014-08-12 12:49:54
  • 그녀와 나는 홍대의 한 레즈비언 바에 앉아 인터뷰를 했다. 카페가 아닌 바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인터뷰 하기 전부터 그녀는 섹스 이야기를 할 생각에 매우 신나보였다. 어떤 이야기를 할 지 준비한 것도 모자라 어떤 컨셉으로 사진을 찍을지까지 준비해왔다.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인터뷰 준비를 해 온 언니를 만난 건 처음이라 나도 살짝 기대와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밝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들을 한껏 쏟아내었다.

     

    "아직까지도 통금이 있어요"

     

    처음 혼자 했을 때는 아마 일곱 살 때인가 여덟 살 때였어요. 어떻게 시작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저한테는 자위가 그냥 놀이었어요. 어린이용 베개는 되게 작잖아요. 바지에 들어갈 만큼. 그 베개를 바지에 넣은 다음에 소위 말하는 붕가붕가를 한 거죠. 그 날도 그렇게 혼자서 하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문을 똑똑 두드리는 거예요. 빨리 처리를 해야 되잖아요. 베개를 빼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자세히 뭔지는 모르지만 가족이나 친구가 있는 데서 하면 안 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어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베개를 바지에서 빼고 옷을 주섬주섬 다시 입고 문을 열었죠. 그랬더니 엄마가 뭐했어? 너 뭐하고 놀았어? 짬지 만지고 놀았지? 이러더라고요. 아무래도 문 여는 데 시간이 좀 걸렸으니까 의심을 한 거죠. 그 때 엄마 표정이 엄청 심각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한테 자전거를 사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엄마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안 돼. 처녀막 다쳐. 그 때는 어리니까 처녀막이 뭔지도 잘 몰랐지만 굉장히 억압받는 느낌이 들었었어요.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어요. 중학교 때 학교에서 교과서 이름 바꾸기가 유행이었어요. 제 짝이 사회를 자위로 바꾼 거예요. 화이트랑 펜으로. 그게 너무 재미있어보여서 저도 사회책을 자위로 바꿨어요. 그런데 어느 날 집에서 제 책이랑 책가방이 몽땅 없어졌어요.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제 사회책을 아빠가 보고 화나서 옥상에 갖다 버렸다는 거예요. 옥상에 가보니까 책이 다 찢어져있고 가방이 널 부러져 있더라고요.

    그 때 너무 충격을 받았었어요. 대체 이게 무슨 뜻인 줄 알고 썼냐고 아빠가 엄청 화를 냈는데. 너무 무서워서 내가 한 게 아니라 친구가 장난친 거라고 거짓말했어요. 혼나기 싫고 나는 힘이 없었으니까.

    저는 그런 시간들이 억울하고 슬퍼요. 부모님이 보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해줬다면 분명 달랐을 텐데. 아직까지도 통금이 있는데 여전히 못 깨고 있어요. 조금씩 싸우고 있긴 한데 힘들어요. 엄마랑 더 많이 싸우고 싶어요. 그런 문자를 엄마한테 보낸 적도 있어요. 엄마, 가부장제 사회에서나 성녀 창녀 나누는 거지. 여자인 엄마까지 그러지 말라고.

     

     

    "한창 달아오르다가도 십자가를 보면 죽는 거예요"

     

    저는 어릴 때부터 자위도 하고 그랬었기 때문에 순결에 대한 별 관념이 없었어요. 그런데 자꾸 교회는 그런 걸 주입시키는 거예요. 제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긴 했는데 이 말하면 좀 웃기긴 하지만, 열일곱 살 때 신을 만났어요. 그 이후로 더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됐고요. 교회에서는 성을 굉장히 억압하잖아요. 제가 방에 야광 십자가를 걸어두었었는데 혼자 하면서 한창 달아오르다가도 십자기를 보면 죽는 거예요. 자위 하다가 무릎 꿇고 회개기도를 하기도 하고 그랬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결국 십자가를 떼어서 서랍에 박았어요. 심지어 순결서약을 쓴 적도 있었어요. 하나님, 저는 하고 싶어요. 왜 결혼 전에 하는 게 죄에요? 이런 기도를 하면서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시는 짝이 나타날 때까지 내가 내 몸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도 같이 했어요.

     

    그야말로 분열이었죠. 너무 답답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너무 민망하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인지 죄책감이 사라졌어요. 그 때부터는 머리맡에 성경책이 있어도 자위를 할 수 있게 됐어요.

    아마 여성주의 관련해서 공부하면서부터였던 거 같아요. 말 그대로 페미니즘의 구원을 받은 거죠. 여성학 책들을 보니까 논리적이고 똑똑하게 써져있더라고요. 제가 어릴 때부터 궁금했던 부분들이. 많은 여성들이 오해를 하잖아요. 내가 자위를 많이 해서 내가 섹스를 해서 내 보지 모양이 달라졌나. 저도 그랬었거든요. 당연히 소음순 크기는 양쪽이 똑같을 수 없는데 내가 만져서 그런 건가 싶어 걱정을 했었어요. 다른 피부와 다르게 까만 것도 내가 만져서 그런가 싶었고. 그런 부분들이 여성주의 책들을 읽으면서 해소가 됐죠. 교회 다니는 언니들이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즐겁게 섹스하고 자위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벌 안 받고 이렇게 잘 살아 있잖아요.

     

    "말 그대로 65만원짜리 자위였어요"

     

    교회에서 목사라는 사람이 이런 설교를 했던게 기억이 나요. 형제들 자위하지 않습니까? 자위를 죄로 보긴 하지만 자위를 하는 대상도 남성이라고만 생각하는 거죠. 속으로 생각했어요.. 어, 나도 자위하는데, 나 여잔데. 자존심 상했어요.

    중학교 때 탐폰을 처음 썼거든요. 탐폰 솜 넣고 나면 막대기가 남잖아요. 그걸 서랍에 고이 간직해놨다가 그걸로 자위를 해본 적도 있어요. 콘돔대신 기름종이를 손가락에 붙여서 질에 넣어본 적도 있고요.

    작년에는 자위하다가 앞니 하나가 깨졌었어요. 벽에 부딪쳐서 앞니 반이 날아간 거예요. 이불 위에서 붕가붕가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너무 열심히 한 거예요. 이마를 벽에 부딪쳤는데 반동으로 입도 부딪혀서 앞니가 나간 거죠. 입이 찢어지고 피가 나서 거울을 보니까 앞니 하나가 반이 깨져있더라고요. 아빠가 뭐하다 이가 깨졌냐고 물어보는데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부딪쳤다고 말하긴 했는데 계속 물어보더라고요. 병원 가서 앞니 하는데 65만원 들었거든요. 말 그대로 65만원짜리 자위였어요.

     

    저는 주로 잠자기 전에 자위를 해요. 추운 겨울에는 이불을 미리 깔아놓고 바닥이 따끈따끈해졌을 때 하는 게 좋아요. 제가 침대 없이 바닥에서 자거든요. 온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따뜻해야 하고 싶은 생각이 나지, 추우면 생각이 잘 안나요. 추우면 삽입도 잘 안되더라고요. 애액도 빨리 마르고. 실크 같은 부드러운 옷을 입고 있을 때도 좋아요.

    저는 자위를 할 때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드넓은 자연 환경과 맞닿아있는 경계라든지. 탁 트인 곳, 섬이나 바다 같은 장소를 생각해요. 아무도 없는 부드러운 풀숲에서 뒹구는 상상도 좋아요. 상대방에 대해서는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요. 분위기가 더 중요해요. 편안한 분위기를 떠올리는 게 좋아요. 초 켜고 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2년 전에 도대체 야동을 보는 사람은 무슨 재미로 보나 싶어서 한번 본 적이 있었거든요. 피스톤 운동하는 장면 보면서도 저러다 불나겠다, 살 까지겠네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더라고요.

     

    주로 손가락으로 하는 편이에요. 손가락으로 만질 때 촉감이 좋아요. 아직 딜도를 써본 적은 없고요. 아, 중학교 때 오이로 자위를 하다가 오이가 부러진 적이 있어요. 오이 껍질을 깎아서 넣었는데 오이가 생각보다 약하잖아요. 그러니 안에서 부러진 거죠. 부러졌는데 안 나오는 거예요. 거울을 비춰봤는데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아무리 방방 뛰어도 안 나오고. 벌 받았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그 때도 순간적으로 기도를 했어요. 앞으로 이런 짓 안하겠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그 때는 정말 무서웠어요. 안에서 오이가 썩으면 어떡하지. 공포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나중에 겨우 뺐는데. 그 뒤로 한동안 오이 기피증이 생겼었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오이로 계속 자위를 했죠. 이건 제가 터득한 건데 오이를 살짝 익히면 더 잘 들어가요. 부모님이 없을 때 주로 하지만 부모님이랑 같이 있을 땐 오이를 몰래 냉장고에 가서 꺼내온 다음에서 방에서 깎아서 사용해요. 그런데 하고 나서 오이를 처리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래서 지하철 화장실에 버린 적도 있어요.

     

    가끔 여자 질은 약해서 조심해야한다고 말하는 거 보면 웃겨요. 저는 제 보지에 탐폰도 넣고 손가락도 넣고 펜도 넣어봤지만 아무런 이상도 안 생겼거든요. 그런데 마치 보지에 뭔가를 넣으면 엄청난 일이 생길 것처럼 그러는 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고추 삽입은 정상으로 여기면서 손가락 삽입이나 펜 삽입은 더럽게 취급을 하는 지. 고추도 잘 안 씻으면 더럽잖아요. 손도 깨끗하게 씻으면 깨끗한 거고. 왜 삽입 자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지 이해가 안돼요. 손가락에 콘돔을 끼면 손톱에 다칠 위험도 줄일 수 있는데.

     

     


    "아직까지 파트너 섹스를 해 본 경험이 없어요"

     

    저는 누군가와 관계맺음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었어요.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도 없었고. 친구가 소개팅 할 거냐고 물어봐도 거절했었고. 굳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연애하는 게 이해가 안됐거든요. 그래서 누군가와 사귀어본 적이 없어요. 그러다가 작년에 처음으로 어떤 여자 분을 많이 좋아하게 됐었어요. 그런데 애인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되고 충격을 많이 받았죠. 친구로도 못 지낼까봐 겁이 많아서 좋아한다고 말도 못하고. 혼자서만 정숙하게 좋아하다가 말았어요. 남들은 보통 십대 때 좋아하는 사람 생기고 그러잖아요. 애들까지 모여서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하면서 노는데 저는 그 때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전 어떻게 보면 늦은 거죠. 좋으면 좋다고 하라는 데 저는 그게 어렵더라고요. 연애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아직까지 파트너 섹스를 해 본 경험이 없어요. 통금이 있으니까 원나잇 같은 걸 할 여력이나 시간도 없었죠. 물론 가끔씩 꼴린다거나 그런 적은 있었어요. 한번은 교회에서 부치 같은 언니를 보고 끌린 적이 있었는데 안 돼. 여기는 교회지. 이렇게 생각하고 넘어갔었어요. 대중교통 이용할 때 몸 좋은 남자들이 제 옆에 앉거나 그럴 때 있잖아요. 살짝 살짝 부딪치면 꼴릴 때가 있어요. 아무튼 올해 안에는 꼭 남이랑 섹스한다는 목적의식에 불타있는 상태에요.

     

    모르는 사람한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리며 “저기요, 야 씹쌔야, 나랑 한 판 할래?” 라고 말해보고 싶어요. 뭔가 터프하게 내가 널 리드하겠다하는 느낌으로. 소위 말하는 ‘아다’인 거 티내고 싶지 않아요. 초보인 거 티 나면 어쩌지, 멍청하게 쭈뼛거리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하면 짜증이 나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은데, 머뭇거릴까봐.

    원래는 자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워서 섹스가 궁금하다거나 하진 않았거든요. 파트너 섹스에 대한 판타지도 없었고요. 지금은 같이 욕조에서 거품목욕 해보고 싶어요. 여자랑 사귀게 된다면 상대의 턱을 살짝 잡고 립스틱을 발라주고 싶어요. 살짝 입술을 깨물어도 주고 싶고요. 제가 하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니까 지인들이 혼자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제 혼자 하는 것도 질렸어요. 올해 안으로 꼭 쌈박하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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