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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녀차별 없는 대한민국, 우리 손에 달렸다.
    이프 / 2010-04-26 03: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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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차별 없는 대한민국, 우리 손에 달렸다.

                                                                      김수빈

                                                           <김포시 고창중학교 1학년5반>


     나는 예전부터 이상하게도 남녀차별이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남성적인 성격에 여성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 “너는 여자애가 어쩜 그러니?”, “여자애가 그렇게 조신하지 못해서야.......”같은 말을 가끔 들었기 때문이었던 같다. 어렸던 나는 그럴 때마다 괜히 주눅이 들어 들고 있던 총, 칼 장난감을 스르륵 내려놓았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여성 운동가이신 큰 고모님의 말씀과 여성과 남성에 관한 보다 더 자세한 것들을 듣게 된 후 나는 내가 여자인 게 잘 못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종갓집인 친가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도 털털한 옷에 이번 해는 총, 다음 해는 칼 하며 어른 분들께 다소 충격적인 등장을 보여드리기도 했다. 또한 절을 하는 때에 큰 엄마, 작은 엄마, 고모들과 같은 분들은 부엌에 들어가 절을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때, 나는 굳이 비집고 들어가서 집안 남자들 사이에 끼어 절을 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특별하게도 남과 여에 대한 생각이 많았던 나는 내가 또래의 애들처럼 남녀차별을 쉽게 넘기지 않는다는 것에 자랑스러운 면이 없잖아 있었다. 덕분에 난 평소에도 생활 곳곳에서 남, 여의 차이와 선입견을 쉽게 알아차렸다. 그래서 난 나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글을 이어보려 한다.


     우리나라 조선에서부터 유교로 인해 뿌리 깊게 전해진 인습인 ‘성차별’은 아무리 예전부터양성평등을 외쳐도 도저히 뽑아지지가 않는다. OECD에서 선정한 인권점수가 최하위인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일 때 특히 남녀 차별이 심했다. 그래서인지 요즘 세대의 아이들도 남자와 여자를 쉽게 차별한다. 하지만 남녀 차별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부나 여성운동가와 같은 사람들이 있듯이 외국에서도 성차별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우리는 양성평등에서 뒤떨어져 있다. 게다가 우리가 예전부터 성차별이 심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이들은 모두 신라의 여왕들이다.


     물론 삼국시대일 때, 양성평등이 그렇게 중요시된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려의 역사를 읽다보면, ‘고려 제일의 재판’, ‘고려의 명재판’이라고 불리는 손변의 재판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23대 왕 고종 때 경상도의 안철부사로 있던 손변은 남동생이 누나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재판을 하게 된다. 소송의 이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모두 누나에게 주었다는 것인데, 손변은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만약 둘이서 유산을 나누어 가지게 되면 나이가 어렸던 동생이 돈을 흥청망청 써버릴까 걱정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네가 유산을 받게 되면 남편도 있는 너의 누나가 너에게 신경을 쓰지 않게 될까봐 누나에게 유산을 모두 준 것이다.”라고 답하여 둘의 우애를 돈독하게 해주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두 사람의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명쾌한 손변의 재판에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아버지가 여자인 누이에게 유산을 물려주었단 것이었다. 사실 고려시대에서는 딸과 아들 상관없이 유산을 물려줄 수 있었고 또한 자식을 나타낼 때도 남녀 상관없이 먼저 태어난 자식부터 말하였다. 출가외인이라느니 하는 말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왔을 때 생긴 말이다. 조선에서는 자식을 나타낼 때 무조건 몇 남 몇 녀로 말을 해야 했다. 이렇듯 우리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성차별이 심했던 것이 아니다. 자유분방하고 남녀차별이 적었던 고려가 ‘남녀칠세부동석’의 조선으로 바뀐 것처럼 우리들도 남녀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다시 바뀔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손에 달렸다.


     아무래도 내가 여성이다 보니 여성의 입장에서만 글을 쓴 듯 보일 수 있다. 남녀차별에서는 늘 여성이 차별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것에 익숙해져서 ‘레이디 퍼스트’같은 말들을 너무 쉽게 사용하는 여성들이 있다.

    무거운 물건을 드는 것은 남자가 하는 것이고 힘들고 위험한 일도 모두 남자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겉으로는 양성평등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여자라서’라는 핑계로 뒤로 슬쩍 빠진다면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래도 여성보다는 남성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이 사회에서 여성들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연습해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여성이 불리하기는 하지만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선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렇게 노력하여 성공한 여성의 수가 증가한다면 여성에 대한 시선과 선입견이 달라질 것이다. 그럴수록 여성과 남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날이 가까워질 테다. 혹시 당신이 여성이라면, 당신이 너무 ‘여자라서’라는 말을 남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당신이 그런 핑계로 뒤로 물러설 때, 차별 없는 사회도 멀어진다.


     징병제가 성차별이라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자의 임신과 남자의 군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여자의 임신은 선택에 달렸지만 남자의 징병은 의무이다. 어쩌면 힘들고 괴로운 군대생활이 임신보다 더 큰 존재일 수도 있다.

     하. 지. 만. 여성의 신체적 능력이 남성보다 떨어진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스포츠 경기에서도 남자경기와 여자경기가 따로 있는 것처럼 남녀는 엄연히 다른 점이 많다. 남자가 군대를 가는 고통과 여자의 임신과 출산의 고통은 비교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서로의 고통을 알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임신은 피임을 하면 고통을 얻지 않지만 군대는 피할 수 없다는 유치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피임에 따른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결국 우리는 임신과 군대를 들먹이며 서로의 고통을 비교하기 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알아주어야 한다. 어떤 외국인은 대한민국이 남자 대 여자로 싸우는 나라라고 했다. 다른 이들의 눈에 이렇게까지 보일 정도면 남녀가 서로를 잘 모르는 것이 맞다고 할 수 있다.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를 더욱 잘 알고 있어야만 한다.


     사실 성차별은 원천적으로 ‘여자’로 부터 나왔다. 이를 인식하고 여성을 우대하기 시작한 사람들로 인해 성차별이 남자까지로 퍼져 나오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여자는 불리하다. 이런 상황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남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들이 더 차별받는 것 같고 여성들만 우대한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차별’인지 ‘구별’인지 잘 판단해 보아야 한다. 양성이 평등해야지만 세상은 더욱 빛이 나게 된다. 차별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김수빈양>

     

    <편집자 주>

    이글은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중학교 1학년 여학생 김수빈양이 보내주신 글입니다.

    김수빈양에게는 이프 발행 도서 1권을 증정해 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기고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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