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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찬호 선생님께 (2)
    한지환 / 2010-05-24 1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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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오찬호 선생님. 한지환입니다.

      남겨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조금 당혹스럽군요. 저는 ‘모든 남녀 구성원이 성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전제가 타당한지의 여부’가 지난 논의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전혀 다른 문제들을 제기하셨더군요. 워낙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셨으니 저도 글을 나누어 저의 입장을 피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남성학자’가 아닌 ‘남성운동가’라는 호칭으로 불러달라는 저의 부탁을 문제 삼으셨는데, 그렇게 부탁드린 이유는 제가 아직 스승이신 정채기 교수님이나 서구의 여러 남성학자들처럼 저 혼자만의 힘으로 학문적, 이론적 토대를 만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권위와 식견(識見)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가 하는 활동은 그 분들의 연구 성과와 그로부터 도출된 이론들에 비추어 우리 사회의 이슈들을 설명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정채기 교수님께서는 공동저서『페미니즘에 대한 남성학과 남성운동』의 서문에서, 저를 일컬어 “한국 남성운동의 최첨병 임무를 수행하는 실천적 인물”이라고 평가해주셨는데, 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제가 사회운동을 이론 및 학문과 비교해 “천민”으로 폄하했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저의 글 가운데 어느 부분을 근거로 그런 결론을 내리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론적 틀로서의 ‘남성주의(男性主義, Masculism)’, 이러한 이론을 교육하고 연구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남성학(男性學, Men's Studies)’, 이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사회변화를 조직적으로 실행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남성운동(男性運動, Men's Movement)’의 우열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처사일 것입니다. 다만 사회 전반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만드는 ‘학자’라는 칭호는, 오랜 연구와 전문적인 지식, 무엇보다 학계로부터 부여된 공식적인 직함을 필요로 하는 칭호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저는 아직 그러한 요소들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학자’라는 칭호는 저에게 부적합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2. 선생님께서 생각하신 ‘상상력’이라는 것이 미토스(mythos)가 아닌 로고스(logos)라면, 저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남성학은 진실(truth)인가?” 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셨는데, 저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그러한 질문은 저의 의도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신 것입니다. 제가 말하려 했던 것은 남성학 그 자체가 진실이라는 것이 아니라, 무릇 제대로 된 이론 내지 학문이라면 ‘허구적인 상상력’이 아닌 ‘사실적인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명감을 가진 학자나 사회운동가라면, 온라인상에서 여성계나 정치권의 음모론과 관련해 ‘3류 소설’을 쓰는 이들의 행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선생님께서도 여기에는 틀림없이 동의하실 것입니다.

     

      3. 남성주의의 등장이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의 여성주의를 “구리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기존의 여성주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실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남성주의에 근거한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며,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과 상충되는 기존의 여성주의 이론들에 대해서는 신중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은 남성과 관련하여 규정되고 구별되지만, 남성은 여성과 관련하여 규정되지 않는다”는 저명한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주장은 많은 이들이 거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 조지 모스(George Mosse), 카스파 마제(Kaspar Maase) 같은 역사학자들과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 같은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남성도 여성처럼 그 자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이며, 나아가 여성이 남성과 관련하여 규정되고 구별되듯이 여성도 남성성의 창조에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우테 프레베르트 박사의 지적처럼, 보부아르는 남성성과 여성성 간의 이중적인 관련성과 상호 지시 관계, 그리고 그 때마다의 개별성을 간과한 나머지, “남성성 또한 사회적인 가설이며 여성성과의 대결과 구분을 통해 계획되고 생산되었다는 사실”, “여성성이 끊임없이 남성성에 의한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확인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성 또한 여성성과의 관련 없이는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남성성 및 여성성과 관련해 새롭게 밝혀진 이러한 사실들을 기존의 여성주의적 시각에서는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주의자들이 보다 열린 자세로 자신들의 이론을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남성의 피해자성과 여성의 수혜자성을 지적한 저의 주장에 대해 몇몇 네티즌들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이런 편협한 태도는 분명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4. “남자들 스스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북 치고 장구 쳤다”고 말씀하셨는데, 물론 사실무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한쪽 면만을 바라본 편파적인 지적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남성과 여성은 모두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존재’이며, 카스파 마제 박사의 말처럼 여성들이 매긴 우선순위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대단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제가「한국 여성에게 고하는 글」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현재 결혼시장에서 여성들의 대다수가 배우자를 고름에 있어 남성의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으뜸가는 조건으로 꼽고 있고, 실제로 거기에 걸맞은 경제적 능력과 사회적 지위를 갖추지 못한 저소득층 남성들은 결혼시장에서 도태되어 국제결혼시장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결혼시장의 현주소입니다. 혹자는 이를 여성 고용 불평등이라는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 설명하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흔히 ‘Gold Miss’라 불리는)의 배우자 선택기준에 대한 조사결과 역시 여느 여성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를 사회ㆍ경제적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못한 시도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여성들 역시 남성들 못지않게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이 유지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며, 남성성의 창조에 여성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남성사(男性史) 및 여성사(女性史) 전문가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의 지적처럼 적지 않은 남성들이 그러한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고수하려 드는 것은 사실이며, 그들에 대한 비판은 남성주의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남성성과 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만들어낸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서, 남녀 모두가 그러한 스테레오타입을 상대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어느 한쪽만을 비난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한 태도일 것입니다. 남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데에 여성들이 무시할 수 없는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역사학적, 인류학적 연구결과들은 물론, 오늘날 결혼시장에서 드러나는 일련의 사회상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남자들 스스로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북 치고 장구 쳤다”는 선생님의 지적은, 마치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사회ㆍ문화적 구조 속에서 성형과 미용에 집착하는 여성들의 자성(自省)만을 촉구하는 것만큼이나 불공평하고 편파적인 지적이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여성주의적 시각만 가지고는 이러한 사실을 지적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남성 억압의 새로운 측면, 그리고 이에 대한 남성주의자들의 목소리에 여성주의자들이 보다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울러 지적해주신 내용 가운데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먼저 “한지환씨의 주장을 보면 페미니즘에는 동의하지만 그런 식으로 설득해서는 안 된다는 훈계형 논조가 굉장히 많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난번에 남긴 글의 내용 중 어느 부분을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리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우선 저는 말씀하신 그런 식의 발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성해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남성해방과 결부시키고자 하는 저의 관점에 비추어 볼 때, 그러한 주장은 오히려 저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주장입니다. 굳이 이와 관련해 이야기하자면, 남성들이 여성주의에 설득되는 것을 꺼려서는 안 되듯이, 여성들 역시 남성주의에 설득당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2. 그리고 “페미니즘의 기본 전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고찰 없이는 남성주의와 관련된 어떠한 논쟁도 생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은, 남성의 피해자성과 여성의 수혜자성을 부정하며 ‘여성은 피해자이며 남성은 가해자 내지 수혜자’라는 전제를 종교적 도그마(dogma)처럼 고수하는 한, 여성주의 진영과 남성주의 진영 간의 대화는 끊임없이 겉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한 것입니다. 만약 ‘여성은 피해자이며 남성은 가해자 내지 수혜자’라는 전제대로라면, 남성들의 자성을 주된 과제로 삼는 급진적 관점을 제외한 남성주의의 여러 노선들은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주 전「나는 ‘욕망’한다. 고로 존재한다」하단에서 벌어진 댓글 논쟁은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나, “소수의 선각자(先覺者)들의 존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어떻게 ‘남성학자=선각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신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소수의 선각자들”이라는 것은 사회ㆍ문화적 구조가 강요한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지난번에 쓰신 글「여성문제,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에서처럼 구조주의적 시각에만 함몰될 경우, 우리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소수의 ‘저항자’들을 발견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회ㆍ문화적 구조 역시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지적하려 했던 것입니다. 한양대학교 사학과 임지현 교수가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남성사를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기존 규범에 순응하지 않는 개인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문화와 역사적 변화의 동인으로서 개인과 소규모 집단의 개성을 재발견”하려는 새로운 역사 연구방법인 신문화사(미시사)를 추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타파하는 데에 앞장서는 진보적인 페미니스트들, 남녀의 전통적인 역할 분담을 거부한 여성 가장(家長)들은 모두 이러한 소수 집단에 속하는 이들입니다. 제가 말한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타파할 동력”도 바로 이들의 존재를 가리킨 것입니다.

     

     

      오찬호 선생님. 몇 주 전에 쓰신 글「여성문제, 무서워서 글을 쓸 수가 없다」는 비록 제가 지적하려는 핵심을 정확히 집어내지는 못하셨을지언정 비교적 반론을 제기하기가 수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쓰신 글「남성학이 널리 유통되길 바라며」는 저의 주장에 대한 왜곡이 다소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협박”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저의 오만함을 지적하셨던 선생님께서, “페미니즘 이론으로 우리나라를 조명할 때 설명되지 않는 지점은 없다”는 오만하기 그지없는 발언을 내뱉으신 것은 자기모순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 오해하신 바와 달리, 저는 남성주의가 ‘진리’라고 말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말할 생각도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의 모든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도구인 양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행동이야말로 ‘여성주의=진리’라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고방식의 발로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저에게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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