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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혜숙 선생님께
    한지환 / 2011-03-08 11:27:18
  •   안녕하십니까? 황혜숙 선생님. 한지환입니다.

      어제 올리신 글「양성평등 여성주의에서 여신 여성주의로!」를 읽었습니다. 모성(母性)을 비롯한 여성성을 바탕으로 소위 ‘여신 여성주의’라는 것을 주장하셨는데, 흥미로운 주장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우선 외람된 말씀일지 모르나, 선생님께서 모권제(母權制, matriarchy) 사회와 모계제(母系制, matriliny) 사회를 혼동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권제 사회라는 것은 여성이 특정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회구조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여성이 단순한 상징적인 지위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혹은 경제적으로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가족구성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가 바로 모권제 사회라는 것이지요.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청동기시대 이후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까지 수많은 씨족공동체사회에서 여성이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모계제 사회로서 씨족공동체사회의 존재를 인정하는 연구자들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여성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상징적인 지위만을 가지고 여성에게 실질적인 권력이 부여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조지 머독(George Murdock)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전 세계 447개 사회 가운데 58개 사회가 모계제를 취하고 있었지만 그 어느 사회에서도 여성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경우는 없었으며, 역사학자 이이화(李離和) 교수 역시 이러한 사실 등을 바탕으로 “모권사회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단정 지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문화인류학자 가운데 모권제 사회를 인류 사회의 진화 과정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였던 단계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씨족공동체사회를 비롯해 육체적인 힘이 생존과 직결되었던 전근대사회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을 상대로 투쟁을 벌임에 있어 보다 공격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남성이 힘의 논리에 따라 여성을 지배하는(때로는 보호하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과거에 이른바 ‘여성 중심 사회’가 존재하였다는 주장도, 그러한 과거를 모델로 삼아 현재와 미래를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역사학적, 인류학적 연구결과에 비추어 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여성에게 실질적인 권력이 주어지지 않은 사회를 ‘여성 중심 사회’라고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을뿐더러, 남성이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는 이러한 사회를 우리 사회의 모델로 삼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덧붙여서, 부체제(部體制)를 비롯한 삼국시대 초기의 연합정치를 놓고 “여성 중심의 고대 한국 역사와 전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 삼국(三國)은 이미 농경과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남성 지배집단이 사회의 헤게모니를 확실하게 거머쥔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삼국이 초기에 연합정치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치력이 미약하였기 때문일 뿐, 이것은 지배집단의 성별과 전혀 무관한 문제라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여자는 자기 몸을 풀어 출산하므로 여자가 자기 몸에서 난 후손을 자신의 안녕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라는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선생님께서 모성을 비롯한 여성성을 여성의 본성으로 생각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 어디까지나 사회의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문화적 구성물”이라는 것은 토마스 퀴네(Thomas Kuhne), 우테 프레베르트(Ute Frevert), 카스파 마제(Kaspar Maase),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 등 수많은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며, 철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는 저서『만들어진 모성』(동녘, 2009)에서 사회사(社會史)에 대한 고찰을 통해 여성의 본성으로 간주되어온 모성 역시 어디까지나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하였습니다. 실제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성이 여성성을 거의(혹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경우가 얼마든지 존재하며, 반대로 남성이 오히려 여성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주장대로라면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역사학적, 인류학적으로 시대와 장소에 따라 수없이 그 모습을 바꾸어온 여성성을 여성의 본성인 양 말씀하시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나아가 1995년 북경 제4차 여성대회 정부기구(GO) 회의에서 ‘섹스(sex)’ 대신 ‘젠더(gender)’가 성(性)을 가리키는 용어로 채택되어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는 현실도 함께 고려해보아야 하겠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남성주의(男性主義, Masculism)의 여러 관점 가운데 자유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저로서는, 사회생물학 등을 근거로 흔히 ‘가부장제’라 불리는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과 선생님의 그것 사이에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선생님께서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 하에서 남성에게 요구되었던 역할 및 책임을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과 무관한 것처럼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맨 처음 말씀드린 내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입니다. “양성평등을 구하는 여성은 과연 자신이 남녀 역할만 바꾸거나 남녀 역할에 구별을 없애면 여성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볼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역사적으로 남성이 권력을 장악하고 여성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떠맡은 역할 및 책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여성보다 우월한 육체적인 힘을 가진 남성이 때로는 ‘전사’로서, 때로는 ‘경작자’로서 사회구성원의 생존을 책임지며 사회ㆍ경제적인 생산력과 생산수단을 장악하였고, 이를 통해 남성 우위사회가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다는 것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씨족공동체사회의 실질적인 권력은 남성이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여러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도 남성의 권력을 유지시켜준 것은 자신들의 육체적인 힘을 이용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을 상대로 사회구성원의 생명을 보호하였던 그들의 역할 및 책임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성이 ‘전사’ 및 ‘경작자’로서 남성과 똑같은 역할 및 책임을 떠맡음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힘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이 남성 우위사회를 깨뜨릴 실질적인 동력(動力)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만약 보다 우월한 경제적, 사회적 힘을 가진 남성이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 든다면, 실질적인 힘을 가지지 못한 여성의 입장에서 이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구성원 간의 경쟁과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없애려 하였던 현실사회주의 체제는 원로 역사가 조지 이거스(Georg Iggers)의 말처럼 소위 “악몽(惡夢)”으로 판명되었고, 굳이 페르낭 브로델(Fernad Braudel)이나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같은 저명한 연구자들의 주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예측 가능한 미래에 계서제(階序制)와 무한 경쟁을 심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라질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여성이 모성을 비롯한 여성성을 내세워 자본주의 체제의 무한 경쟁을 뚫고 현대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을까요? 물론 현대 사회에서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성이 재평가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것 역시 무한 경쟁을 극복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남성성의 뒷받침을 받았을 때에나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적절한 답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에서, 여성성을 내세워 남성 우위사회를 깨뜨리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성이 부족한 이상주의의 발로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덧붙여서, 선생님께서는 남성과 여성이 병역을 비롯해 그 동안 어느 한쪽 성에게만 요구되어온 역할 및 책임을 똑같이 나누자는 주장을 “매우 저급한 논리” “비(非)현실적 공론”이라고 매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과학기술이 인간의 육체적인 힘을 압도함에 따라 여성이 생산노동은 물론이고,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 남성이 떠맡았던 역할 및 책임까지 얼마든지 대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여성이 남성의 전통적인 역할 및 책임을 대신 떠맡을 수 있게 된 만큼, 남성이 육아나 수유(授乳) 등 그 동안 여성에게 요구되었던 역할 및 책임을 대신 떠맡지 못할 이유도 전혀 없지요. 이러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비현실적인 공론”에 사로잡혀 있으신 분은 오히려 사회를 규정하고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 할 수 있는 사회ㆍ경제적(혹은 물리적) 역학관계를 외면하신 선생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여성이 정말 전통적인 성적(性的)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그 동안 남성에게 요구되어온 역할 및 책임을 앞장서서 떠맡음으로써 남성과 대등한 경제적, 사회적 힘을 거머쥐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역할 및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남성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부드럽고 섬세한 여성성만으로는 경제적, 사회적 힘을 가질 수 없으며, 인류 역사상 경제적, 사회적 힘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대등한 위치에 선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론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구조에 뿌리 내린 관념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모성, 여성성, 여신(女神) 같은 것들은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사회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구성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가부장 사회에서 어떻게 남녀가 평등할 수 있으며 또 그 구체적인 목표가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경제적, 사회적 힘을 거머쥐게 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 무너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성별 이원체계라는 사회ㆍ문화적 구조 하에서 남성에게 주어진 권력은 기본적으로 사회ㆍ경제적 구조로부터 만들어지고 유지되어온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모성, 여성성, 여신 같은 관념을 내세워 소위 ‘정신적 승리’를 얻어낸다 할지라도, 이것은 지식인의 현실도피나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같은 ‘정신적 승리’만으로는 결코 남성 우위사회를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신학자로서 선생님께서 가지고 계신 견해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역사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력은 기본적으로 관념이 아닌 물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동안 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내용들을 이번 기회에 비교적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보다 많은 이들이 남녀 모두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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