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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성해방을 위한 제언(提言)
    한지환 / 2014-01-20 10:02:37
  • 들어가며

     

    2013년 7월 국내 유일의 반(反)페미니즘 노선 남성단체인 <남성연대>의 성재기 대표가 남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이 사건으로 그동안 가부장제라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 속에서 수혜자로만 알려진 남성의 처지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가 되고, 남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남성단체의 존재가 세간에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여성문제와 맞물려 있는 남성문제를 연구하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는 ‘남성학(Men's Studies)’과 ‘남성운동(Men's Movement)’을 아우르는 이념적 틀을 ‘매스큘리즘(Masculism)’이라 한다. 매스큘리즘은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등장해 최근 우리 사회에도 조금씩 알려지고 있는 사회적 움직임이다. 그동안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급진적 페미니즘이 주도해온 여성운동이 남성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고,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는 시점에서, 매스큘리즘 나아가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인 남성해방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남녀관계를 새로이 고찰하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남성억압의 실태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남성해방의 관점에서, 남성해방을 배제하지 않은 진정한 양성평등의 방향에 대해 제언하려 한다.

    이 글에서 취하고자 하는 관점은 자유주의적 남성운동의 관점이다. 자유주의적 남성운동은 1990년 케네스 클래터보우(Kenneth Clatterbaugh) 교수가 분류한 매스큘리즘의 7가지 관점 중 친여권적(親女權的) 관점의 한 갈래이다. ‘친여권적’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유주의적 남성운동가들의 기본인식은 가부장제로 인한 성적 억압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성성과 여성성에 근거한 남녀의 역할분담을 ‘신(神)의 섭리’, ‘생물학적 본성’이라 주장하는 보수주의적 남성운동과 달리, 자유주의적 남성운동은 남녀 간의 전통적인 역할분담을 남녀의 선천적인 기질에 의한 구분이라기보다 사회의 필요에 따라 형성된 인위적인 산물로 간주하며, 궁극적으로 그 파기를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남성운동은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성적 억압의 피해자이며, 남성은 가해자 내지 수혜자’라는 페미니즘의 이분법적인 틀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이나 급진적 남성운동과 입장을 달리한다. 요컨대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성적 억압의 수혜자로서 남성의 모습과 피해자로서 여성의 모습은 물론, 피해자로서 남성의 모습과 수혜자로서 여성의 모습까지 주목하는 남성운동이다.

    이 글에서는 전자인 수혜자로서 남성의 모습과 피해자로서 여성의 모습은 다루지 않았다. 이는 수많은 친여권적 남성운동가들과 페미니스트들이 이미 충분히 다뤘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껏 많은 이들이 간과하고 주목하지 않은 사실, 전통사회에서 남성 역시 자신들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사회적 역할을 선택할 수 없었으며 능력 여부에 관계없이 과중한 책임을 강요받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성역할이 단순한 현상이 아닌 사회문화 구조 아래서의 성별 이데올로기가 되어 후기 산업사회인 오늘날까지 뿌리 깊게 남아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려 한다. 또한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성별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듯이 여성 역시 남성을 억압하는 성별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있으며,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는 남녀 모두의 다양한 욕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깨닫기 바라는 바이다. 남성해방과 여성해방이 궁극적으로 동전의 양면이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남녀 각각의 이해와 정서가 뚜렷이 드러나는 결혼시장의 동향과 이를 뒷받침하는 결혼문화의 현주소이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양태에 차이가 있을 뿐, 결혼은 거의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사회문화 기제로서 남녀 개인이 거쳐야 할 중요한 통과의례이다. 지난 5~6년 동안의 결혼시장의 동향과 결혼문화의 현주소에 대한 고찰을 통해 남성억압의 실태를 파헤쳐보려 한다.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가 남성에게 가하는 성적 억압

     

    페미니즘은 성별 이원체계를 근간으로 남녀 간의 엄격한 역할분담이 존재하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를 가부장제라 정의했다. 가부장제 아래서 여성에게는 이른바 ‘돌봄 노동(care work)’이, 남성에게는 ‘가족부양 및 보호’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이런 구조는 남성에게 사회를 지배하고 여성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수많은 책임을 부여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돌봄 노동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일방적인 억압과 착취라 말한다. 하지만 성별 이원체계는 남녀 모두에게 각기 정해진 성역할만을 강요했기에 남성 역시 자신들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역할을 선택하지 못하고,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율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강압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성별 이원체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현재까지 유럽 각국의 법률에 남아있는『나폴레옹 법전』중 213조 “남자는 아내를 보호해야 하고 여자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기본덕목은 ‘여성을 지배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페미니스트들이 간과하는 보호라는 개념에 주목해야 한다. 중세는 물론 오늘날까지 서양인들의 심성 속에 남아있는 ‘기사도’와 이를 근대적으로 계승한 ‘신사도’라는 관념체계는 혈족의 범주를 넘어 같은 계급에 속한 여성 전체에 대한 남성의 책임을 강조했다. 실제로 19세기까지 숙녀가 모욕당하면 신사는 목숨을 건 결투로 이를 갚아야 했고, 19세기 영국과 미국에서는 아내가 빚을 지면 남편이 대신 채권자의 사설 감옥에 들어가야 했다.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 남성에게는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그 구성원들을 보호할 책무가 주어졌다. 즉 생산노동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군역이나 부역 등 국가적 의무를 통해 외적과 재해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며, 전시에는 목숨을 걸고 다른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은 거의 모든 사회에서 남성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된 성역할이었다.

    물론 체력과 근력이 생산력 및 전투력으로 직결됐던 전근대사회에서 이런 역할분담은 불가피한 것일 수 있다. 문제는 근대 산업사회를 거쳐 후기 산업사회가 시작된 이후에도, 가족부양자 및 보호자라는 남성의 성역할이 여성의 그것 못지않은 굳건한 성별 이데올로기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남성은 강해야 한다’, ‘나약함, 소심함, 의존성 같은 인간적인 결점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결코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근면함과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여성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의 성별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건재하다. 이로 인해 남성은 사회적 성취, 여성에 대한 보호의 책임에 따른 중압감, 그리고 실패에 따르는 좌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성별 이원체계 아래서 남성에게 강요되는 이런 성역할을 매스큘리즘에서는 ‘치사적 역할(致死的 役割, lethal role)’이라 부른다. 즉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에서 여성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과도한 부담감과 중압감을 남성에게 지움으로써, 남성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자칫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유해한 성역할이라는 뜻이다. 남성에게 요구되는 가족부양의 1차적 책임, 남성의 경제력에 대한 과중한 기대, 그리고 남성(특히 한국 남성)의 과도한 근로시간 등은 이런 성별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이와 관련된 우리 사회의 구체적인 현실을 살펴보자.

     

    * 여성가구주

    - 통계청이 2009년 7월 발표한 “2009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가구주 비율은 5가구 중 1가구(22.2%)였다. 집계된 여성가구주를 혼인상태별로 분석하면, 사별 41.0%, 미혼 23.6%, 유배우자 18.2%, 이혼 17.2% 순으로, 상대적으로 소수인 여성가구주 중에서도 5분의 4 이상이 남편이 없는 상황에서 가족생계를 책임졌다. 즉 자발적인 가족부양이 아니라,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가족부양자는 당연히 남성이어야 한다는 성별 이데올로기가 사회의 저변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 2013년 5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민의 가족관 및 가족구조 주요변화”에 따르면 서울 시내의 여성가구주는 2012년을 기준으로 29.1%를 차지하고, 여성가구주의 혼인상태별 분포는 미혼 33.6%, 사별 26.3%, 유배우자 23.0%, 이혼 17.1% 순이었다. 여성가구주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결혼으로 소멸될 확률이 높은 미혼여성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결혼비용

    - 2010년 1월 <한국결혼문화연구소>와 백석대 유성열 교수가 공동 연구한 “2009년 결혼비용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결혼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마련비용이 지난 10여 년 사이 약 3배 늘었고, 이 중 신랑 측이 주택마련 비용의 87%인 1억 164만 원을 부담했다. 이에 대해 연구소 관계자는 “집을 마련할 책임이 1차적으로 남자에게 있다는 전통적 결혼관이 아직껏 크게 변하지 않은 결과”라 밝혔다.

    -『서울신문』이 결혼정보업체 <선우>와 2012년 12월 조사한 결과, 남성이 신혼집을 마련한다는 응답이 2001년 87.4%에서 2011년 91.3%로 늘어나,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됐음에도 신혼집 마련은 여전히 남성의 몫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유성열 교수는 “부모세대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결혼문화는 물론, 집은 남자가 장만해야 한다는 가부장적 고정관념을 깨야한다”고 강조했다.

     

    * 근로시간

    - 통계청의 “2009년 생활시간조사”에서 20세 이상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4시간 52분으로, 20세 이상 한국 여성의 근로시간보다 2시간 4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월간 노동리뷰』2009년 7월호에 따르면, 한국 남성은 <OECD> 30개국 중 정년퇴직 후에도 가장 오랫동안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 남성이 정년퇴직 등으로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공식퇴직연령’은 60세이고, 노동시장에서 퇴장해 실제로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실질은퇴연령’은 71.2세로, 퇴직 후에 11.2년을 더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여성의 공식은퇴연령은 60세, 실질은퇴연령은 67.9세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과 관련해 대다수 여성이 가지고 있는 성별 이데올로기이다. 본래 사회문화 구조란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의식구조와 상호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가부장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남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당연시하는 여성의 성별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 2009년 상반기『조선일보』가 <피델리티 자산운용>, <현대경제연구원>과 함께 한ㆍ일 여성들의 은퇴준비에 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가정경제에 대한 책임을 남편 혼자 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남편이 부인을 위해 본인 사망 후 필요자금을 준비해두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 기혼여성의 62.4%가 ‘남편이 준비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남편 사별 후 생활비에 대해 남편과 대화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7.8%가 ‘없다’고 답했다. 대다수 여성들은 남편이 혼자 알아서 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퇴준비를 위한 자산운용도 한국 여성들은 남편과 상의하거나 일임한다는 비율이 42.2%로 가장 많았다.

    - 기혼여성들의 가장 큰 파경 원인은 경제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 5월 제출한 연구보고서 “혼인실태와 가족주기의 변화”에 따르면, 파경 사유로 ‘성격 차이’는 줄어든 반면, ‘경제문제’와 ‘학대ㆍ폭력’이 증가했다. 분석 결과 이혼ㆍ별거 사유로 경제문제가 26.1%로 가장 크고, 다음은 배우자 외도 24.1%, 성격 차이 22.2%, 학대ㆍ폭력 12.9%, 가족부양의무 불이행 11.1%, 가족 간 불화 2.3%, 기타 1.2% 등이었다. 김유경 연구원은 “최근 결혼한 여성일수록 배우자 외도보다 경제문제, 가족부양의무 불이행 등을 들어 이혼ㆍ별거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추세”라 설명했다.

     

    이 같은 자료는 중년여성들은 물론, 대다수 젊은 여성들조차 가족부양자 및 보호자라는 전통적인 성역할을 남성에게 요구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오늘날 많은 여성들이 ‘맞벌이’를 통해 가정경제에 일정부분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세워 여성의 돌봄 노동 부담을 ‘이중부담’이라 주장하고, 나아가 이를 근거로 여성고용 불평등을 야기하는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남성노동자에게 지급되는 ‘가족임금’ 등을 비판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자료들을 토대로 살펴보면, 맞벌이 가구라 해도 결혼비용 및 근로소득 등과 관련해 남성의 경제적 기여가 여성보다 훨씬 높으며 근로시간 역시 여성에 비해 눈에 띄게 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맞벌이가 전통적인 부담에서 남성을 해방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이웅진 소장은 한국의 결혼문화를 ‘남고여저(男高女低)’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이는 결혼상대 선택에 있어 남성이 여성보다 나이, 학력, 경제력 등 제반조건이 우월해야 한다는 사회구성원들의 성별 이데올로기와 이에 따른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남고여저라는 단어는 맞벌이라는 말의 이면에 숨어있는 우리 결혼문화의 특징을 잘 설명해준다. 남편이 단순히 가사를 일정부분 돕는다고 해서 가정 내에서 양성평등이 이뤄졌다고 할 수 없듯이, 여성이 단순히 2차적 가족부양자나 보조자로서 가족부양을 돕는 것으로 양성평등이 이뤄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성의 가족부양 책임은 순전히 여성고용 불평등 때문?

     

    남고여저의 결혼현상에 대해 혹자는 여성고용 불평등이라는 사회경제 구조의 부조리를 문제 삼는다. 즉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에 따른 여성고용 불평등이 해소되어 여성의 경제적 여건이 남성과 동등해지면, 남성도 자연히 가족부양의 1차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되리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남고여저의 결혼문화를 단순히 여성고용 불평등이라는 사회경제 구조 때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남녀 간의 물질적 역학관계가 뒤바뀌어 남성이 경제적 책임에서 해방될 경우 여성을 억압하는 성별 이데올로기 역시 자연히 사라진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있다. 만약 여성이 외적인 경제활동의 주체로서 가족부양의 1차적 책임을 도맡게 된다면, 전통적으로 여성이 떠맡아온 돌봄 노동에 대한 남성들의 성별 이데올로기가 자연히 사라져 여성이 돌봄 노동 부담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회구성원들 간의 관계에 있어 사회경제 측면에서의 변화가 사회문화 측면에서의 변화를 반드시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하부구조의 단순한 반영이 아니라는 것은 역사학계에서는 널리 인정된 사실이다. 실제로 사회문화 구조를 지탱하는 관습, 도덕, 법률, 사상, 종교 등은 그 문화적 요소들 간의 통합을 유지하려 들며, 이것이 일단 특정 사회의 독특한 사회문화 전통으로 굳어지게 될 경우 그 본질적인 기본구조는 어떤 혁명적 사건이나 정치적, 경제적 압력으로도 쉽게 바꿀 수 없다.

    오늘날 결혼시장의 동향은 이를 확인시켜주는 증거이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2008년 6월 커플매니저 60명을 대상으로 고학력 전문직의 ‘골드미스’와 ‘골드미스터’의 결혼조건, 이성(異性)상, 특징 등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30대 골드미스들은 대체로 자신들과 비슷하거나 높은 제반조건을 갖춘 동년배 남성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반면, 30대 골드미스터들은 대개 미모와 젊음을 갖춘 어린 여성을 선호했다. 고학력 전문직 남성들의 이런 욕구가 불황의 여파로 일찌감치 결혼시장에 뛰어든 20대 젊은 여성들의 욕구와 맞물리면서 골드미스의 결혼이 사회문제화가 됐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전통적인 배우자 선택기준이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들이 경제력과 지위를 획득함에 따라 그들은 더욱 높은 제반조건을 갖춘 남성을 원하고, 그 결과 결혼시장에서 만혼여성의 증가와 더불어 저소득층 남성(농어업 및 단순노무직 종사자 등)의 소외가 오히려 심화된 것이다.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많은 여성들은 설령 자신들에게 가족을 부양할 경제력이 있어도 ‘비혼(非婚)’의 삶을 선택할지언정, 자신들이 남편과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여고남저(女高男低)’의 결혼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중앙일보』가 통계청의 “2010 인구주택총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 평균 결혼연령인 29세 이상 미혼여성 중 대졸자는 63%인 반면에 남성 평균 결혼연령인 32세 이상 미혼남성 중 대졸자는 44.8%에 그쳤다. 2010년 기준 대학원졸 미혼여성은 대학원졸 미혼남성보다 70.1% 많았다. 반면 고졸 미혼남성은 같은 학력 미혼여성보다 27만 7,780명 더 많았으며, 중졸 이하 미혼남성(21만 6,827명)도 여성(8만 5,312명)보다 훨씬 많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분석을 놓고 “‘ABCD이론’이 이번에 통계로 입증됐다”고 말한다. ‘전통적 결혼관에 의해 A급 남성은 B급 여성과, B급 남성은 C급 여성과, C급 남성은 D급 여성과 결혼하기 때문에 결국 결혼시장에 남는 것은 A급 여성과 D급 남성’이라는 이론이다. 충남대 전광희 교수는 “지금은 여성의 학력과 지위가 급신장하면서 고학력 여성의 눈높이에 맞는 남성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며 “그런데도 여성의 결혼관은 아직 크게 달라지지 않아 결혼 미스매치가 늘고 있다”고 했다.

    - 2012년 2월 서울시가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와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기본통계조사”를 분석한 결과, 남성은 학력이 낮을수록, 여성은 학력이 높을수록 미혼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서울 40대 고졸 이하 남성 중 미혼비율은 18.7%로 대졸 이상 미혼비율(9.8%)의 2배를 기록했다. 대학원졸 이상 남성 미혼비율은 5.3%에 불과해 학력이 높을수록 미혼비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35∼40세 여성의 경우 대학원졸업자의 미혼비율은 23.9%로 가장 높았다. 대학졸업자 중 미혼비율은 16.8%였으며, 고졸 이하는 12.2%에 그쳤다.

     

    혹자는 골드미스들도 같은 레벨의 골드미스터들보다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그들이 여고남저의 결혼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가 조사한 골드미스(3천 5백만 원~1억 원)와 골드미스터(4천 500만 원~1억 5천만 원)의 연봉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고학력 전문직 여성들이 가족부양의 1차적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남고여저의 결혼을 선택하는 평범한 서민 남성들이나 저소득층 남성들의 경우도 당연히 가족부양의 1차적 책임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평범한 중류층 여성들보다도 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저소득층 남성들의 상당수가 경제적 기반이 없는 개발도상국 여성들과 결혼해 가족부양의 1차적 책임을 부담하는 현실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 결혼문화 속에 남고여저의 결혼관념이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처럼 가족부양으로 대표되는 남성의 전통적인 책임은 남성을 가족부양자 및 보호자로, 여성을 피부양자(또는 보조자) 및 피보호자로 여기는 성별 이데올로기, 즉 사회구성원들의 의식구조와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가부장제 아래서의 성별 이데올로기를 여성의 입장에서만 해석해, 전통사회에서 남성 역시 고정된 성역할만을 강요받아온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가해자 내지 수혜자로만 치부하는 ‘절름발이 페미니즘’의 사고로는 진정한 양성평등을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여성고용 불평등이라는 여성억압이 해소되면 남성도 자연히 전통적인 경제적 책임으로부터 해방될 것이라는 주장은 기성의 사회구조를 여성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며 남성억압을 여성억압의 부산물 정도로 여긴 페미니스트들의 잘못된 판단이라 볼 수 있다. 전통사회는 물론 현대사회에도 남녀를 불문하고 남성을 억압하는 성별 이데올로기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를 인정하고 해소하지 않는 한 여성고용 불평등을 비롯한 여성억압이 해소되어도 남성은 전통적인 책임에서 해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한다면,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 및 남성노동자에게 제공되는 가족임금을 ‘여성을 억압하기 위한 기제’로 바라보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의 시각은 편협한 시각이다. 그들이 비판하는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의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의식 이상으로, 남성에게 강요된 여성에 대한 보호의 책임이 존재한다.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로 인해 후기 산업사회인 오늘날까지도 여성의 경제력 유무에 관계없이 남성에게 훨씬 무거운 경제적 책임이 지워지는 것이 현실이며,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은 이런 현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페미니스트들이 맞벌이 여성들을 ‘슈퍼우먼’이라 부르며 과대평가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는 남성에게 훨씬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자유로운 성역할의 선택: ‘보호할 권리’, ‘보호받을 권리’

     

    페미니즘은 그동안 여성해방의 기치 아래 여성의 교육 및 사회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남성과 대등한 능력과 자아를 계발할 것을 촉구해왔다. 이런 방식이 남성해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강요된 강함’에서 비롯된 남성억압은 ‘강요된 약함’에서 비롯된 여성억압과 그 해법이 같을 수 없다. 남성해방의 궁극적 목적이 가부장제에 부합하지 않는 힘없고 유약한 남성들을 기성의 사회구조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면, 남성억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페미니즘 식의 평등 추구는 남성해방의 1차적 수혜자가 되어야 할 힘없고 유약한 남성들에 대한 폭거가 될 수 있다.

    인간사회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존재한다. 사회주의자들이 문제 삼는 사회경제 측면에서의 빈부 격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체구가 우람한 사람과 왜소한 사람이 존재하듯이, 강하고 능동적인 사람이 존재한다면 반대로 유약하고 수동적인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인간사회이다. 가부장제에 적합한 강하고 능동적인 소수의 남성들을 제외한 나머지 다수의 남성들, 유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용납 받지 못한 채 강인함과 능동성을 강요받아온 많은 남성들의 입장에서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파와 맞서라는 채찍질이야말로 그들을 옥죄는 굴레일 수 있다. 강하고 능동적인 여성에게 유약하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일 것을 강요하는 것이 폭거라면, 같은 논리로 유약하고 수동적인 남성에게 강하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일 것을 강요하는 것 역시 폭거로 간주되어야 한다. 요컨대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을 무시한 평등 추구는 오히려 남녀 개개인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보호할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를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 남성학의 선구자 정채기 교수는 2002년 <한국여성단체연합>과 인터뷰에서 “남자의 인생에 게으를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 남자가 실직하면 여자가 나설 수도 있고, 남자가 울고 싶을 때는 여자가 안아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남성해방은 이런 시각에서 다뤄져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함과 약함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남녀관계에 있어서의 강함과 약함은 전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따라서 남성이 약해지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보다 강하고 능동적인 여성과 지속적인 남녀관계를 맺음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그러하듯이, 여성이 상호적이고 쌍무적인 남녀관계 속에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남성을 보호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강하리라는 보장이 없는 후기 산업사회에 어울리는 새로운 남녀관계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새롭고 다양한 남녀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남성해방은 여성들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에 얽매임 없이 남성의 영역으로 진출하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받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에서 벗어나 여성의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남성들의 모습이 인정되고 그 위상이 확고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2007년 9월『중앙데일리(JoongAng Daily)』에 소개된 본인의 에세이 “킹콩걸들이여! 미스터 앤 대로우를 지켜라”에서 ‘킹콩걸’에 대비되는 이른바 ‘미스터 앤 대로우’라는 남성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오늘날의 여성들이 ‘거짓되고 강요된 여성성을 벗어던지고 킹콩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킹콩걸』의 저자 비르지니 데팡트(Virginie Despentes) 선생의 주장은 당연히 옳다. 그러나 킹콩이 존재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아름답고 연약한 앤 대로우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듯이, 킹콩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그들의 존재의미를 일깨우는 미스터 앤 대로우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지 모스(George Mosse) 교수는 저서『남자의 이미지』에서 현대 남성성의 구성요소에 대해 설명하면서, 남성은 결코 고립된 채 존재할 수 없으며 따라서 “남성의 자기 이미지 속에 늘 여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현대 남성성은 부분적으로 여성성과 대비를 통해 구축됐다는 것이다. 현대 남성성이 구축되는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과는 다른 아름다움과 수동적인 본성을 지닌 존재’, ‘남성에게 종속적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의존은 남성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인식됐다.

    이를 근거로 재고해보면 “여성은 남성과 관련해 규정되고 구별되지만, 남성은 여성과 관련해 규정되지 않는다”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말은 잘못된 지적임을 알 수 있다. 남성 또한 그 자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여성성과 마찬가지로 남성성 또한 여성성과의 상호적인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이는 기성의 여성성을 포기한 ‘남성스러운 여성’, ‘해방된 여성’이 전통적인 남성의 영역에서 완전히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역시 기성의 남성성을 포기하거나 갖추지 못한 ‘여성스러운 남성’, ‘해방된 남성’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즉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여성성으로부터 벗어난 강하고 능동적인 여성들은, 마찬가지로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남성성으로부터 벗어난 유약하고 수동적인 남성들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가부장제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여성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보호할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는 오늘날 일련의 여성억압을 타파할 수 있는 직접적인 열쇠가 될 수 있다.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 아래서 남성에게 우선적인 고용 및 승진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성별 이원체계 아래서 그들이 가족부양자 및 보호자로서 가족의 생계를 우선적으로 책임져야 할 가장이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독 가족부양자 또는 남고여저의 결혼에 따른 1차적 가족부양자인 남성과 피부양자 또는 2차적 가족부양자 및 보조자인 여성에게 차등적인 권리를 제공하는 것이 남성생계부양자 가족모델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에게 요구된 다른 성에 대한 상대적 역할을 여성 역시 남성과 대등한 수준으로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이는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는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요컨대 자유주의적 남성운동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이성 간의 ‘보호할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는 남성해방과 여성해방을 완성시키는 데에 불가결한 요건이다. 물론 남성에게 새로이 주어질 ‘보호받을 권리’를 찾아가는 노력은 페미니즘이 그동안 주장해온 ‘가정 밖에서 재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찾아가는 노력과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더불어 해방된 남성이 가지게 될 새로운 권리에는 과거 여성에게 요구됐던 것과 유사한 형태의 새로운 책무(가사와 육아 등 돌봄 노동)가 뒤따른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정채기 교수의 주장처럼 “한 인간으로서 누리고자 하는 자유와 상대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이 맞물려 돌아가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 전체의 참된 해방”이야말로 자유주의적 남성운동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가치이다. 다른 사람의 정당한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거나, 타인이나 사회에 지고 있는 책임을 유기할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보호란 전근대사회에서 이뤄진 아내에 대한 남편의 보호나 미성년자에 대한 친권자의 그것처럼 양쪽 모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권리 또는 책임의 양도가 아니다. 남녀관계에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보호를 제공할 시, 이는 상호적이고 쌍무적인 성격을 띠어야 함은 물론, 이에 따른 권리와 책임에 대한 양자 모두의 자발적인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두 남녀가 이성으로서 관계를 맺는 단계에서부터 개개인의 능력과 적성에 맞는 역할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이후의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성별에 관계없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보호자의 방종이나 책임 유기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상에서 말한 것들은 기성의 사회문화 구조 아래서의 남녀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중대한 협약이라 할 수 있다. 즉 ‘절름발이 페미니즘’에 근거해 여성에게 주어질 권리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전통사회에서 남성이 누리지 못했던 ‘보호받을 권리’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보호할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와 책임이 부여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고정된 성역할만을 강요했던 성별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역할분담을 정립하고, 성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새롭고 다양한 남녀의 모습이 동등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남성성과 여성성에 근거한 전통적인 역할분담을 고수하려 드는 보수주의적 남성운동의 도그마는 물론, 남성을 성적 억압의 가해자 내지 수혜자로, 여성을 그 피해자로만 바라보는 페미니즘의 이분법적인 틀을 깨뜨릴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나오며

     

    『남자 만세』의 저자 워렌 패럴(Warren Farrell) 박사의 지적처럼, 구미 선진국의 국민들에게 20세기 말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페미니즘 이데올로기의 대립에 따른 남녀갈등의 시대였다. 그리고 21세기 초인 지금, 우리는 그런 남녀갈등의 시대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페미니즘의 뒤를 이어 이른바 ‘포스트 페미니즘(Post-Feminism)’이 대두하면서 전통적인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고 있고, 한국에서는 몇 년 전부터 매스큘리즘이 소개되어 남성억압이 부분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양성평등 이슈에 대한 페미니즘의 독점체제가 조금씩 변화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남녀문제를 다루는 수많은 이데올로기 중 어떤 것이 진정으로 남녀 모두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지 누구도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

    21세기의 남녀는 과연 전통적인 성별 이데올로기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성별에 얽매임 없이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에 따라 ‘보호할 권리’와 ‘보호받을 권리’를 서로 존중받으며 남녀가 모든 면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까? 21세기의 양성평등운동은 남녀 간의 소모적인 다툼을 종결하고, 함께 하는 인간으로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지향하는 탈(脫)성별적인 인간해방을 추구해야 한다는 데에는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모든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현대사회는 다양성과 민주화를 추구하는 사회라 한다. 비교적 보수적인 우리 사회도 그동안 괄목할 만한 외적 성장을 이루면서 외형적으로는 다양성이 보장되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 사회 내에서 특히 보수적인 사회문화 기제인 결혼과 관련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혼외 동거, 무자녀 결혼 등 크고 작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다양성에 비해 내적 가치의 다양성과 민주화는 아직 크게 부족한 수준이다. 우리의 결혼문화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내적 가치의 다양성과 민주화일 것이다. 남녀 개개인이 각자의 능력과 성향을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진정한 자유와 평등, 인간해방을 추구할 수 있는 민주적인 결혼문화가 우리 사회에 하루빨리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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