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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녀
    이프 / 2013-07-16 04:21:22
  • 에벤키 시조신화에서 웅녀는 주인공이다. 수렵민이었던 이들에게 곰은 사냥감이면서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었고 곰에 대한 신앙은 이들에게 곰과 자신들이 한 핏줄이라는 관념을 낳았다. 곰에 대한 숭배와 의례를 정당화하는 시조신화에서 곰은 당연히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곰은 남자를 나포하여 동거하면서 새끼를 낳고, 남자와 분리되는 순간 새끼를 나누는 창조적 행위를 감행한다. 몸을 반으로 나눔으로써 새끼는 죽지만 그 죽음을 통해 피와 살을 나눈 두 몸으로 재창조되고 있지 않은가. 창조적 행위를 통해 스스로 에벤키 족의 시조가 되는 웅녀, 이것이야말로 허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웅녀는 단군신화라는 새로운 신화 체계 속에 포획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에벤키 족과 고조선이 만났을 가능성

     

    물론 단군신화에 포획된 웅녀가 바로 에벤키의 시조모 웅녀라고 단정할 만한 확증은 없다. 그렇지만 몇 가지 유력한 방증은 있다.

    먼저 에벤키 족이 우리와 동일 어족에 속한다는 점이 증거가 될 만하다. 근래 우실하 교수는 바이칼 인근에 거주하는 에벤키 족이 지금까지도 ‘아리랑(맞이하다)’과 ‘쓰리랑(느껴서 알다)’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그는 이를 우리 선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유력한 단서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근래 언어학계에서는 한국어의 알타이어 계통설을 부정하고 있으므로 아쉽지만 단서 목록에서 내려놓자.

    그렇다면 에벤키 족이 본래 고조선의 강역과 무관하지 않은 황하 하류와 화북 일대에 거주하다가 금석 병용기 시대에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루광티엔의 에벤키 족 이동설은 어떤가? 에벤키 족과 고조선이 어떤 식으로든 만났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이런 방증도 미심쩍다면 <세종실록>의 한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지개(亏知介)의 풍속이 여자는 모두 방울을 찹니다. 무오년 5월에 여자 셋이 벚나무 껍질을 벗기려고 산에 들어갔다가 한 여자는 집으로 돌아오고 두 여자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해 11월에 사냥하는 사람이 산에 들어가서 곰 사냥을 하다가 나무의 빈 구멍 속에서 방울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나무를 베어 내고 보니 두 여자가 모두 아이를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 연유를 물으니 대답하기를 “지난 5월에 벚나무 껍질을 벗기려고 산속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어 집에 돌아가지 못했는데, 수곰의 협박을 당하여 함께 잔 후 각각 아이를 낳았다”라고 하였는데 그 아이들의 얼굴이 반은 곰의 모양과 같았습니다. 그 사람이 그 아이들을 죽이고 두 여자를 거느리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세종 21년(1439) 7월 2일 함길도(함경도) 도절제사가 올린 정문(呈文)의 한 부분이다. 함경도 우지개라는 곳에 전해지는 이야기가 하도 수상해서 형조에까지 보고서를 올린 모양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적어도 이 이야기에서 함경도 지역에 에벤키 신화와 유사한 전승이 15세기에 유포되어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피살된 우지개의 곰 아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마치 곰나루 전설처럼 곰 시조신화가 전설화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지개 마을의 곰 이야기는 에벤키 신화와 곰나루 전설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이런 증거들을 통해 우리는 에벤키 족, 혹은 적어도 에벤키 신화와 같은 신화를 지닌 종족이 고조선에 통합되면서 신화 역시 통합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신화의 통합 과정에서 고조선의 하부 구성원으로 된 종족의 시조신은 지배 종족의 시조신인 환웅의 짝으로 상징화되면서 자신들의 종족 이야기인 웅녀 이야기를 잃어버린다. 동시에 여신 웅녀의 이미지는 남신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아들을 낳기를 간걸하는 타자의 이미지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에벤키족 여성(사진 출처http://blog.naver.com/ginhair79/50031786984) 
     

    절망한 웅녀의 자살

     

    단군을 낳은 단군신화의 웅녀는 어디로 갔을까?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단군을 낳기 위해 잠시 자궁을 내어준 대리모 같다. 단군을 낳았다는 진술 이후 웅녀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고조선 건국신화에서 웅녀는 건국을 위해 동원된 존재지만 웅녀는 웅녀를 시조모로 섬기는 에벤키 족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한 어머니였을 것이다. 현재의 에벤키 족들이 시조신화를 전승하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생각해 보라. 고조선에 편입되어 동화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상실했거나 고조선의 해체 이후 그 잔류 집단이 북방의 유목민으로 돌아갔을 때, 혹은 그 일부만이 고조선의 유민으로 남하했을 때 전승할 입과 힘을 잃은 에벤키 족의 웅녀 이야기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되었을까? 창조와 재생의 능력을 잃은 여신 웅녀는 강물 앞에서 절망하고 자살할 수 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곰나루 전설>이나 <봉화산의 암곰>전설은 그저 ‘배신한 남성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자살한 어떤 여성의 이야기’ 식의 통속적 서사만은 아니다. 웅녀의 잃어버린 신화가 묻혀 있는 신화의 유적이다.

    기필코 발굴되어야 할 유적이다.

     

    **윗글은 조현설 교수(서울대 국문과)의 책 『우리신화의 수수께끼』(한겨레출판)에서 발췌했습니다. 관심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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