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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회]강림의큰부인 여성3
    이프 / 2014-03-31 06:15:41
  • 강림의큰부인 여성은 세상에 대한 좋은 안내나 문제해결의 행운을 가져다주지는 못할지라도 상심에 빠진 자녀나 친구들에게 따뜻한 둥지를 마련해 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강림의큰부인 여성들은 새로운 틀짜기의 힘은 아니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바람직한 시민 원형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양보와 희생을 향하는 그녀의 항상심, 배려, 안정과 조화를 지향하는 인내심을 가진 그녀는 남편과 자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롭다.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희생과 양보, 약자를 동정하는 마음, 상대에 대한 이타심은 감동적이다. 오래도록 소중하다고 인정되는 것들, 예를 들어 가정의 유지, 기업이나 사회의 안정과 평화는 강하고 단호한 것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고 여리고 약하며 자기주장과 색깔이 없는, 이런 강림의큰부인 여성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빈스룸(1996). 제리 잭스. 아버지 마빈이 쓰러지고 그에 대한 모든 책임을 언니 베시에게 맡겨둔 채 자신의 삶을 찾아 멀리 떠나버린 리. 이기심과 이타심이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삶은 분명 사랑스러운 것이더라도….(사진 출처:구글이미지-네이버블로그gojiyong2)
     

    그럼에도 강림의큰부인 여성들의 배려와 희생이 그녀들의 주체적 선택이었다기보다는, 그녀들이 약자였기 때문에 떠맡겨져, 도맡게 되어 왔던 것임을 부정하기 힘들다.

    배려와 희생과 양보는 어떤 여건에서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것이기 이전에 개체적인 인간간의 소통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일 때 사랑스럽다. 서로 진정으로 나누지 않는다면, 개인적 관계에서건 사회 속에서건, 쉴 새 없이 부딪히게 되는 배려와 희생의 요구를 매순간 감당할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다. 돌이킬 수 없는 파탄으로 가기 전에 강림의큰부인 스스로도, 그 상대들도 서로를 해명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이롭고 누군가는 약자로 맺어지고 유지되는 관계는 위태롭다. 개인적인 관계건 가족이건 사회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에 의해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은 분명 극복되어져야 할 일이다. 진정한 안정과 평화는 그녀가 혼자 지켜온 것들을 모두 같이 지키려 노력하는 날이 올 때 가능해질 것이다.

     

    여성적 가치들이라 불리는 것 중에 중요한 하나는 모든 인간관계나 사물과의 관계에 무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큰 파장이 생길까, 늘 양보하고 희생하며 사는 강림의큰부인 여성들은 남성지배의 사회에서 열녀, 양부, 조강지처라는 모범적 모델로 내세우며 종용하기에 알맞은 여성이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누르고 남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그녀들이 칭송된다는 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녀의 비존재를 칭송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여성멸시와 똑같은 여성관의 앞뒷면이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온 것들에 대해 결국은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경험은 주위에 허다하다.

    그녀가 받는 칭송이, ‘저 여자 봐라~, 남편이 저 모양으로 한 번 거들떠보지 않는데도 집안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제사며 온갖 집안일에 제 할 도리를 다하고 있지 않느냐’며 정당한 남녀관계를 원하는 많은 여성들의 요구를 일축하는 사례로 어이없이 사용되고, 여성차별을 더욱 횡행하게 한다는 점을 강림의큰부인 여성들은 눈여겨보아야 한다. 물론 제 정신이 아닌 건, 그걸 사례랍시고 내미는 상대방이나 끄덕거리는 주변 사람들이지만 강림의큰부인 자신도 ‘너는 엉망이지만 나만큼은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 많다. 관례를 따르고 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도리를 다하는, 옳은 행동이라 말한다.

     

    권력이나 부, 다양한 선택의 기회가 적고, 전문성과 경제적인 독립, 자신만의 개성을 확보할 수 없는 조건에서 여성들의 정체성과 권리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공허한 일일 수 있다. 인간 여성에 대한 존중이 단지 여성들의 의식과 의지의 차원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므로 강림의큰부인 개인 여성만을 몰아세우는 것은 또 다른 소외를 낳을 오류에 빠지게도 한다. 그럼에도 강림의큰부인 여성들이 그녀들의 미덕을 약점으로 만들어버리는 상대들의 기막힌 구성에까지 둔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위치에서, 어떤 기능으로 존재하는지에 대하여 좀처럼 인식하려 하지 않는 그녀들에 의해 자청비나 가믄장, 삼승할망 여성들은 집안을 망칠 년으로 내쫓김을 당하거나 제값을 받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며 살아왔던 것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희생>(1986)

    주인공 알렉산더는 죽은 나무에 3년 동안 물을 주면서 그 나무에서 꽃이 피어나게 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 희생이라는 이름의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시적인 영화는 심오한 제안을 하고 있지만, 지금, 여기, 우리는 희생이 사랑이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아닐까?

     

    연민에 기반을 두는 선함, 타인에 대한 배려, 인내, 동정심과 포용의 자세와 같은 그녀의 가치는 그녀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의 변화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음을 그녀는 끊임없이 보여줘야 한다. 그녀의 본질적인 가치는 남성지배 사회와의 공범관계의 고리를 잘라내어야만 그녀가 가지는 본래의 가치로 선망 받을 수 있다. ‘도리’는 그녀만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만 지켜야 하는 도리는, 아무도 지킬 필요가 없는 도리일 경우가 많다.

     

    알아주지도 않았고 구박과 멸시만 받았지만, 끊임없이 희생하며 착하게 살아온 강림의큰부인 같은 여성들을 지금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희한한 경험이다. 시도 때도 없이 날라들어 물고 뜯는 각다귀들에 진저리나는 즈음, 작고 조용한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시점인 것 같다. 아마, 이때다!~, 또 그렇게 세상은 강림의큰부인을 부각시키거나 격하시킬 것이다. 각다귀처럼.

    ‘정말 멍청하게 당하기만 하냐!’ ‘자존심도 없나?’, 늘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온 강림의큰부인에 대한 평가는 일정한 기준에서는 맞다. 하지만 물고 뜯는 것은 각다귀의 것이니, 가령, 그녀의 장점까지 훼손해버리는 비판은 삼가고 싶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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